본관은 연안(延安). 고려 공민왕 때 사마시 생원으로 입신하여 호군이 되고 그뒤 삼사우윤(三司右尹)이 되었다.
1392년(태조 1) 조선개국시 태조를 도와 개국공신 3등에 주1 이어 대호군이 되었다. 1396년에 중추원사로 있으면서 서북면 이성수령(泥城守令)을 겸직했다.
1397년 사농경(司農卿)이 되고, 이듬해 동지중추원사 · 의흥삼군부 우군동지절제사 등을 역임하였다. 같은 해 판중추원사에 오르면서 정도전(鄭道傳) · 남은(南誾) 등이 음모하였다는 제1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는 데 협력한 공으로 정사공신(定社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그 뒤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로 있을 때에 연성군(延城君)에 봉해졌다. 1409년(태종 9)에 하정사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1411년 이숭인(李崇仁)을 함부로 처벌하였다는 죄로 탄핵을 받았다. 시호는 주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