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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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종친·공신·당상관 등에게 배당되어 이들을 모시고 다니는 하인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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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종친·공신·당상관 등에게 배당되어 이들을 모시고 다니는 하인무리.
내용

고려시대에는 ‘구사(驅史)’라고 표기하였다. 당상관 이상의 배당자들은 아일(衙日 : 임금이 정하는 날에 임금을 배알하는 일)에 호상(胡床 : 의자의 일종)을 사용하여 그 호상을 들이고 내는 일을 감당하는 자들로 배정하였다. 서반(西班) 당상관은 호상을 쓰지 못하여 제외되었다.

배정된 인원을 보면 1410년(태종 10)에 당상관 1인당 3인, 1412년에 종친·부마 등은 3등급으로 나누어 10인·7인·5인 등으로 하는 원칙을 세웠으나, 대개는 40인 정도까지 범위 밖의 인원을 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관노비 중에서 뽑아서 주인이 죽으면 3년 뒤에 본래의 임무로 되돌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처가 생존하면 그대로 두는 경우가 많았다.

참고문헌

『태종실록(太宗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역주경국대전(譯註經國大典)』(한우근 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집필자
이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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