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재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의 제8대 왕, 예종의 사위로, 도총관 등을 역임한 종실.
인물/전통 인물
  • 본관풍천(豊川, 지금의 황해도 송화)
  • 사망 연도1495년(연산군 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도총관(都?官)
  • 출생 연도1465년(세조 1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우기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의 제8대 왕, 예종의 사위로, 도총관 등을 역임한 종실.

개설

본관은 풍천(豊川). 할아버지는 찬성 임원준(任元濬)이고, 아버지는 임사홍(任士洪)이다. 예종의 딸인 현숙공주(顯肅公主)의 남편으로 1475년(성종 6) 숭덕대부(崇德大夫) 의빈부의빈(儀賓府儀賓)이 되었으며, 1485년 숭덕대부, 1492년 풍천위(豊川尉)가 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78년 아버지 임사홍(任士洪)이 현석규(玄錫圭)를 배척하려다 실각하자 사면을 부탁하는 소를 올렸으며, 그 뒤에도 아버지가 정치적 위기에 빠질 때마다 여러 차례 상언을 통하여 옹호하였다.

무예가 있어 도총관(都楤官)으로 재직하였으나, 1493년 구사(丘史: 왕이 종친이나 공신에게 내린 관노비)의 역가(役價)를 받아들인 것을 비판한 정성근(鄭誠謹)을 무고하였다는 이유로 도총관에서 면직되었다.

문장을 좋아하여 성종으로부터 토지와 미포(米布), 편지가 자주 하사되는 등 총애를 많이 받았으나, 여자 문제로 공주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1494년 진천의 양가녀(良家女) 존금(存今)을 첩으로 삼은 사건이 말썽이 되어 의금부에서 추국을 받아 강원도 통천(通川)에 부처되었다가 평해(平海)로 옮겨졌다.

유배 도중 병이 나 강릉 우계현(羽溪縣)으로 유배지가 변경되었다. 1495년 연산군의 명으로 복직되었으나, 곧 병사하였다.

참고문헌

  • - 『성종실록(成宗實錄)』

  •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紀略)』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