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개성유후사유후, 고부청시사,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393년 문하부직문하(門下府直門下), 이듬해 대사성이 되었다. 1396년 중추원우승지로 있을 때 전년부터 조선과 명나라의 현안문제로 대두된 표전문제(表箋問題)의 찬표인(撰表人)으로 명나라에 압송되었고, 귀환하여 좌승지에 서용되었으며, 다음해 중추원부사에 승진하면서 청성군(淸城君)에 봉하여졌다.
1398년(정종 즉위년) 10월 방간(芳幹)의 난 평정에 대한 공로로 정사공신(定社功臣) 2등에 책록, 곧 첨서중추원사(簽書中樞院事)가 되었다. 이어 예문관·춘추관의 대학사, 정당문학을 거쳐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삼사우사(三司右使)를 지냈다.
1403년(태종 3) 판한성부사가 되었으며, 1405년 살인죄로 직첩을 몰수당하고 영해로 유배되었으나 공신이므로 곧 사면되었다.
개성유후사유후(開城留後司留後)를 거쳐, 1408년 태조가 죽자 고부청시사(告訃請諡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15년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에 진봉되었고, 1421년 진하사(進賀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이듬해 우의정에 올랐다. 태종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익경(翼景)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태조실록(太祖實錄)』
- 『정종실록(定宗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백곡집(栢谷集)』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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