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백형 이원계(李元桂)이며, 이양우(李良祐)의 아우이고, 이조(李朝)와 이백온(李伯溫)의 형이다. 어려서부터 활쏘기와 말타기를 잘하고, 풍채가 아름다웠으며 그릇이 컸다.
1369년(공민왕 18) 동녕부(東寧府)의 수령으로 있다가 이성계의 휘하에 들어가 여러 번 왜구를 토벌해 공을 세우고, 1393(태조 2)년 8월에 강천수(姜天守) 등 595인과 더불어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에 봉해졌다.
1394년 상의중추원사(商議中樞院事)가 되고, 1396년 강원도조전절제사(江原道助戰節制使)가 되어 왜구 방비에 노력하였다. 1398년 동지중추원사가 되었으며, 이 해 1차 왕자의 난이 발생하자 방원(芳遠)을 도와, 형 양우와 더불어 정사공신(定社功臣) 2등에 책봉되고 150결의 공신전을 받았으며, 완산후(完山侯)에 봉해졌다.
1400년(정종 2) 판중추원사를 거쳐 지삼군부사(知三軍府事) 재임 시 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역시 방원을 도와 좌명공신(佐命功臣) 2등이 되고 100결의 공신전을 받았다.
1402년(태종 2) 안주도절제사를 지내고, 다음 해 완산군(完山君)에 개봉되었다. 1404년 판사평부사(判司平府事)를 지내고, 1407년에 정조부사(正朝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의정부찬성사에 오르고, 1409년 병조판서로서 삼군진무소(三軍鎭撫所)가 신설되자 도진무도총제(都鎭撫都摠制)를 겸하였다. 1410년 판의흥부사에 이어 다시 찬성사가 되고, 판의용순금사사(判義勇巡禁司事)를 겸임했으며, 1413년 이조판서를 거쳐 서북면도체찰사로 나갔다.
1414년 완산부원군(完山府院君)으로 진봉되고, 의금부도제조를 지낸 뒤 다시 찬성사에 보직되었다. 사후에 태종의 묘정에 배향되고, 전라도 영광의 묘장영당(畝長影堂)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양도(襄度)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