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이며, 고려의 삭방도만호 겸 동북면병마사 이자춘(李子春: 桓祖)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이씨이다. 조선의 건국자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백형이다. 자식으로는 이양우(李良祐) · 이천우(李天祐) · 이조(李朝) · 이백온(李伯溫) 등 아들 4형제와 딸 4명을 두었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한 뒤, 내부령(內府令)이 되었다. 1359년(공민왕 8), 1361년 두 차례에 걸친 홍건적의 침입을 방어하는데 활약하였다. 특히 홍건적의 2차 침입 때는 조천주(趙天柱) 등과 함께 안우(安祐)의 휘하에 종군하여 홍건적을 격퇴하고 개경을 수복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러한 공으로 1363년 개경을 수복한 공[收復京城功]과 기해년[1359]에 홍건적을 격퇴한 공[己亥擊走紅賊功]으로 각각 이등공신에 책록되고 척산군(陟山君)에 봉해졌다.
1375년(우왕 1) 원나라에서 고려 국왕으로 임명한 심왕(瀋王) 탈탈불화(脫脫不花)가 입국한다는 보고에 따라 국경방비를 강화할 때, 동지밀직(同知密直)으로 원수가 되어 서북방어의 임무를 담당하였다.
이어 1377년 나세(羅世)의 휘하로 종군, 강화에서 왜구를 격퇴하고, 1380년 왜구가 또다시 광주와 능성(綾城) · 화순(和順) 두 현(縣)을 침범하자 원수(元帥)로서 최공철(崔公哲)과 함께 전라도 방어의 임무를 맡았다.
같은해 황산싸움에서 양광도순검사(楊廣道巡檢使)였던 이원계는 원수로 임명되어, 양광 · 전라 · 경상도 도순찰사(都巡察使)인 이성계(李成桂)를 도와 왜구를 격퇴하는 데 공을 세워, 추충절의보리공신(推忠節義輔理功臣) 삼중대광(三重大匡) 완산군(完山君)에 봉해졌다.
1388년 요동정벌(遼東征伐) 때에는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 이성계 휘하의 팔도도통사 조전원수(八道都統使助戰元帥)로 출전하였다가 회군 5개월 뒤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