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여가(汝嘉), 호는 가정(柯亭). 할아버지는 첨지 강영수(姜永壽)이며, 아버지는 강치황(姜致璜)이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으로 공주에서 치른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사헌부장령이 되었다.
그뒤 각지의 수령을 역임하였으며, 삼남지방에 기근이 혹심했던 1669년(현종 10)에는 만경현령(萬頃縣令)으로서 기민구휼을 소홀히 하였다 하여 탄핵을 받았다. 1675년(숙종 1) 동부승지를 거쳐 승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