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봉수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평창군수, 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덕수(德叟)
  • 송암(松庵)
인물/전통 인물
  • 본관진주(晉州)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평창군수|참판
  • 출생 연도1543년(중종 38)
  • 출생지온양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문수홍 (경기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05월 16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평창군수, 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덕수(德叟), 호는 송암(松庵). 온양 출신. 증조부는 판관 강자위(姜自謂)이고, 할아버지는 강문필(姜文弼)이며, 아버지는 강기(姜琦)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73년(선조 6) 진사가 되었고 1580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뒤에 과거시험 답안지가 유실되어 당시 시험감독관이었던 임열(任說) · 김귀영(金貴榮)이 탄핵을 받았다. 이같은 사고로 초사(初仕)가 늦었으나 여러 고을의 수령을 지내다가 1604년 다스리는 고을이 잔폐(殘弊)하여 업무가 어려운데다가 건강이 좋지 않아 평창군수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평소 효성이 지극하여 1666년(현종 7)송준길(宋浚吉)의 상소로 정문이 세워졌다. 1791년(정조 15) 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온양의 충효사우(忠孝祠宇)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 주1

    : 진사급제 : 『만력1년계유2월24일사마방목(萬曆元年癸酉二月二十四日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한貴古朝26-29-3]).

  • 주2

    : 문과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3

    : 참판추증 : 『정조실록』 32권, 1791년(정조 15) 2월 22일. "사학 유생 이명오 등이 온양의 정퇴 서원의 위차 문제로 상소하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