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덕수(德叟), 호는 송암(松庵). 온양 출신. 증조부는 판관 강자위(姜自謂)이고, 할아버지는 강문필(姜文弼)이며, 아버지는 강기(姜琦)이다.
1573년(선조 6) 진사가 되었고 1580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뒤에 과거시험 답안지가 유실되어 당시 시험감독관이었던 임열(任說) · 김귀영(金貴榮)이 탄핵을 받았다. 이같은 사고로 초사(初仕)가 늦었으나 여러 고을의 수령을 지내다가 1604년 다스리는 고을이 잔폐(殘弊)하여 업무가 어려운데다가 건강이 좋지 않아 평창군수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평소 효성이 지극하여 1666년(현종 7)송준길(宋浚吉)의 상소로 정문이 세워졌다. 1791년(정조 15) 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온양의 충효사우(忠孝祠宇)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