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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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고려시대 낭사(郎舍)와 조선시대 사간원 · 사헌부의 합칭, 또는 두 관서 관원의 총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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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 낭사(郎舍)와 조선시대 사간원 · 사헌부의 합칭, 또는 두 관서 관원의 총칭.
내용

간(諫)이라 함은 선·악을 분별하여 국왕에게 진술함을 뜻하는 것으로, 이를 맡은 관서 또는 관원을 간관이라 하였는데 고려시대에는 문하부(門下府)의 낭사인 좌·우간의대부(左右諫議大夫)로부터 정언(正言)까지를 칭하였다.

조선시대에 좁은 의미로는 간쟁·논박의 임무를 맡은 사간원 또는 사간원의 대사간·사간·헌납·정언 등 관원을 간관이라 하였다. 그러나 넓게는 관료의 기강을 감찰하는 사헌부와 사간원을 합칭하여 대간(臺諫)·언관(言官)·양사(兩司) 또는 간관이라 하다.

이는 둘 다 언론의 관서로서 강대한 발언권을 가지고 쟁책과 인사에 관여하였고, 장상대신(將相大臣)이나 종척귀근(宗戚貴近)이라도 이를 규탄하는 것은 물론, 국왕에 대해서도 항상 지극히 바른 말을 하는 것을 본령(本領)으로 하였던 때문이다. 조선시대 간관의 바른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국왕의 중요한 덕목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연산군은 간언을 싫어하여 잠시 사간원을 폐지한 적도 있으나 중종반정으로 복구되었다. 또, 간관이 오래도록 간언을 하지 않으면 직무에 소홀하다 하여 처벌되기도 하였다 한다. 특히, 사간원의 정언 이상, 사헌부의 지평 이상의 간관을 대장(臺長)이라고도 일컬었다.

참고문헌

『경국대전(經國大典)』
『대전회통(大典會通)』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역주경국대전(譯註經國大典)-주석편(註釋篇)-』(한우근 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한국사(韓國史)-근세전기편(近世前期篇)-』(이상백, 을유문화사, 1962)
『한국사-근세전기편-(韓國史-近世前期篇-)』(이상백, 을유문화사, 1962)
「대간(臺諫)의 활동(活動)을 통해 본 세조대(世祖代)의 왕권(王權)과 유교리념(儒敎理念)의 대립(對立)」(정두희, 『역사학보(歷史學報)』130, 1991)
「성종대(成宗代) 대간(臺諫)의 풍문탄핵(風聞彈劾)에 관한 정치적(政治的) 논평(論評)」(정두희, 『송준호교수정년기념논총(宋俊浩敎授停年紀念論叢)』, 1987)
「조선(朝鮮) 성종대(成宗代) 대간(臺諫)의 인사이동(人事移動) 상황(狀況) 및 그 명단(名單)」(정두희, 『두계이병도박사구순기념한국사학논총(斗溪李丙燾博士九旬紀念韓國史學論叢)』,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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