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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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동부승지, 우부승지, 우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종도(宗道)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452년(문종 2)
사망 연도
1504년(연산군 10)
본관
진주(晉州)
주요 관직
영암군수|동부승지|우부승지|우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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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동부승지, 우부승지, 우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종도(宗道). 아버지는 강응(姜應)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사마시에 합격, 진사가 되어 성균관에 들어가 수업중, 1479년(성종 10) 윤비가 폐비되자 동료 62인과 함께 이의 부당함을 주장하다 하옥되었으나 곧 석방되었다.

이듬해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으며, 설서(說書) · 사서 등을 거쳐 1488년 세자가례도감낭관(世子嘉禮都監郎官), 1491년에 헌납이 되었다. 이때 경연에서 가뭄에 대비하여 각 도의 제방수축을 의논하는데 농번기임을 들어 반대하며 추수 뒤 농한기에 실시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 권력에만 눈이 어두워 상관에 아부하는 한건(韓健), 상고(商賈)와 결탁하여 모리를 일삼는 윤은로(尹殷老), 부끄러움 없이 재물을 탐내는 민영견(閔永肩), 교활하고 거짓되고 망녕된 최흥손(崔興孫), 불학무식한 이계명(李繼命) 등이 세인의 지탄을 받아 관직을 더럽히고 있음을 들어 이들의 파직을 상소하였다.

1493년에는 영암군수가 되었는데, 재직중 청렴하고 읍민을 위하여 심혈을 기울여 염근리(廉謹吏: 청렴하고 근면한 관리)로 뽑혀 포상받았다. 1502년(연산군 8) 동부승지에 이어 우부승지를 거쳐 이듬해에는 우승지를 역임하였다.

1504년(연산군 10)에 세상을 떠났으며, 묘소는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백산면 조종2길 조종산에 있다.

참고문헌

『성종실록(成宗實錄)』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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