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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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개성유후사유후, 호조판서, 동북면도제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안석(安石)
우정(雨亭)
시호
문평(文平)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356년(공민왕 5)
사망 연도
1408년(태종 8)
본관
평양(平壤)
주요 관직
개성유후사 유후(開城留後司留後)|호조판서|동북면도제찰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조박은 조선 전기에 개성유후사유후, 호조판서, 동북면도제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356년(공민왕 5)에 태어나 1408년(태종 9)에 사망했다. 문하시중 조인규의 4세손으로 1382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인임을 탄핵하고 조민수를 공격하였으며 윤이·이초의 사건에 대해 상소하여 이색 일파에게 큰 타격을 가하였다. 조선 개국공신 1등에 책봉되었으며 제1차 왕자의 난에 가담하여 정사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태종을 옹립한 공로로 좌명공신 3등에 책봉되었으나 불교를 신봉했다는 탄핵을 받아 공신녹권이 추탈되고 소각되었다.

정의
조선 전기에, 개성유후사유후, 호조판서, 동북면도제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평양(平壤). 자는 안석(安石), 호는 우정(雨亭). 문하시중 조인규(趙仁規)의 4세손이며, 아버지는 전의령(典儀令) 조사겸(趙思謙)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382년(우왕 8) 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삼사좌윤(三司左尹)에 이르렀다.

1389년(공양왕 1) 12월에는 좌사의(左司議) 오사충(吳思忠)과 함께 문하사인(門下舍人)으로서 판문하부사 이색(李穡)권신 이인임(李仁任)을 탄핵하여 이색 부자를 파면시키고 대장 조민수(曺敏修)를 폐하여 서인으로 만들었다. 다음 해 5월에는 명나라에서 돌아온 조반(趙胖)에 의해 보고된 윤이(尹彛) · 이초(李初)의 사단에 의거하여 소를 올려서 이색 일파에게 일대 타격을 가하였다.

이방원(李芳遠)과 동서간이어서 이성계(李成桂)를 따르고 복종하였다. 이에, 정적인 정몽주(鄭夢周)에 의해 청주목사로 좌천, 수원부에 이르렀을 때 사주를 받은 수원부장에게 살해될 뻔했으나 도망쳤다. 1392년 4월 간관들에게 탄핵을 받아 청주목사직이 삭탈되고 귀양갔으나, 8월에 조선이 개국되자 예조전서로서 개국공신 1등이 되어 전(田) 170결(結)과 노비 20구를 받았으며 평원군(平原君)에 봉해졌다. 또한, 9월에 양광도안렴사, 1394년(태조 3) 전라도관찰사로서 민심수습에 힘썼다.

1395년 군사를 점고하지 않고 변방에 대한 보고를 늦게 했다는 이유로 공주에 안치되었다가 다음 달에 석방되었다. 1398년 겸대사헌(兼大司憲)으로서 지경연사정당문학(知經筵事政堂文學) 하륜(河崙)과 함께 사서(四書)의 구절에 방점(傍點)하여 왕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같은 해 10월 제1차 왕자의 난에 이방원을 도와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로서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에 올랐다.

11월에 지경연사로서 경연에서 『대학』을 강론하고 12월에 겸대사헌으로서 좌정승 조준(趙浚), 정당문학 하륜, 중추원학사 이첨(李詹), 봉상시소경(奉常寺少卿) 정이오(鄭以吾), 좌간의대부 조용(趙庸)과 함께 『사서절요(四書節要)』를 찬술하였다.

1399년(정종 1) 정월에 지경연사로서 경연에 사관이 입시할 것을 주장했고, 3월에 대사헌으로서 조준과 함께 집현전제조관이 되었다. 그 해 5월에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주살된 이방석(李芳碩)의 기생첩을 상당후(上黨侯) 이저(李佇)가 취하여 부자간에 천상(天常)을 어지럽혔다고 폭로한 일로 이천으로 귀양갔다가, 곧 경상도감사가 되었다.

1400년 8월 조준을 무고한 혐의로 이천에 다시 유배되었다가, 11월에 참찬문하부사가 되었다. 1401년(태종 1) 태종을 옹립한 공로로 좌명공신(佐命功臣) 3등에 봉해지고 판한성부사가 되었으며, 동지공거(同知貢擧)를 겸하였다. 다음 해 10월 판한성부사로서 하정사(賀正使)가 되어 명나라에 갔다가 다음 해 4월에 돌아와 참찬의정부사를 제수받았다. 1404년 3월 예문관대제학을, 10월 개성유후사 유후(開城留後司留後)가 되었다. 1406년 정월 서북면도순문사가 되어 토관(土官)의 제도를 개혁하자고 건의하였다.

1407년 6월 이강(釐降: 공주를 신하에게 시집보냄)의 의논에 참여한 죄로 양주로 귀양갔다가 다음 달에 소환되고, 다음 해 4월에 호조판서, 7월에 동북면도제찰사가 되었다가 53세의 나이로 죽었다. 1409년 생전에 불교를 신봉했다는 탄핵을 받아 공신녹권이 추탈되었고, 1422년(세종 4) 공신녹권이 소각되었다. 시호는 문평(文平)이다.

참고문헌

『고려사』
『고려사절요』
『태조실록』
『정종실록』
『태종실록』
『세종실록』
『국조방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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