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명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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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문헌
조선후기 문신 남공철이 고려의 명신 · 도학자 · 충신 · 효자 · 열녀 · 일민(逸民)의 행적을 기록한 언행록. 교훈서 · 인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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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문신 남공철이 고려의 명신 · 도학자 · 충신 · 효자 · 열녀 · 일민(逸民)의 행적을 기록한 언행록. 교훈서 · 인명록.
서지적 사항

12권 6책. 고활자본. 1822년(순조 22) 남공철(南公轍)이 간행 경위를 적은 서문을 붙여 편찬하였다.

권1에서 권11에 걸쳐 본전(本傳) 인물 200인, 부전(附傳) 인물 82인, 모두 282인의 행적을 수록하였다. 권1 서두에 명신 항의 선별 인명에 관한 취지를 간략히 밝히고 있다.

고려 창업 때나 성종 대에는 개원(開元)의 체제를 절충해 문물 제도를 정비하고 공덕을 갖춘 신하가 많았는데, 거란·북원(北元)의 침략 이후에는 권신이 발호하여 임금을 높이고 백성을 보호하는 일을 온전히 하지 못해, 사서(史書)에 거짓 등재된 인물이 적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명신만을 가려 뽑았음을 밝히고 있다.

≪고려사≫ 열전에 등재된 본전 인명 가운데 명신전의 항에 들지 못한 명단은 106인이나 된다. 그리고 ≪고려사≫ 열전에 부전된 인물을 제외한 인원도 89인에 이른다. 106인 가운데 나타난 인물의 행적을 대별해보면 다음과 같다.

전반부의 인물들은 정쟁(政爭)에서 희생당한 인물이 두드러지고 있다. 후반부의 인물들은 부원권신(附元權臣)의 일부와 태조공신(太祖功臣) 또는 그 가족, 이어서 명실상부한 고려조의 명신만을 선별한 흔적이 역력하다.

반면, 입전된 인물은 ≪고려사≫ 열전에 등재된 인물에만 국한했을 뿐, 추가된 인물이 한 사람도 없다. 뿐만 아니라 행장의 기사도 ≪고려사≫의 내용을 그대로 전재했고, 오히려 본인에게 치욕적인 구절은 고의로 삭제하고 있어 사료적 가치를 손상시키고 있다.

<도학전 道學傳>은 권11의 맨 끝에 정몽주(鄭夢周) 1인만을 실었고, <사절전 死節傳>은 권12의 전반 부분에 7인을 입전했는데, ≪고려사≫<충의전 忠義傳>에 등재된 7인 가운데 고보준(高甫俊)·정의(鄭顗) 등 5인과 ≪고려사≫ 열전에서 하공진(河拱辰)·홍언박(洪彦博) 2인을 가려서 모두 7인을 등재하였다.

<사사전 死事傳>은 권12의 중반부에 6인을 실었다. ≪고려사≫ 열전의 양규(楊規)·최균(崔均) 등 4인을 옮겼고, 동 충의전의 홍관(洪灌)을 옮겼다. 또 ≪고려사≫ 열전에 없는 신숭겸(申崇謙)을 여기에 실었다.

<효자전 孝子傳>은 <사절전> 다음에 ≪고려사≫<효우전 孝友傳>의 16인 가운데 석주(釋珠)를 빼고 열전에 있는 김광재(金光載)를 옮겨 16인을 등재하였다. <열녀전 列女傳>은 ≪고려사≫<열녀전>의 12인을 그대로 전재하고 있다.

<일민전 逸民傳>은 고려가 망하자 절의를 내세워 은둔한 지사(志士) 남을진(南乙珍)·조견(趙狷)·길재(吉再) 등 12인을 골라 입전하였다. 다음 <박문수전 朴門壽傳>에는 일찍이 찬자(撰者)의 저서인 ≪부조현록 不朝峴錄≫에서 서술된 구홍(具鴻)·김충한(金冲漢) 등 8인을 부전하였다.

이 밖에 두문동(杜門洞)에서 임선미(林先味) 등과 더불어 순절한 태학생(太學生) 69인, 보봉산(寶鳳山)의 세신정(洗身井)·회맹대(會盟臺)에서 순절한 무신 48인, 성거산(聖居山)에 은거하다 분사 당한 판시사(判寺事) 8인 항을 각각 입전하였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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