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후기에, 밀직부사, 계림원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위화도회군 이후 이성계의 집권과정에서 일시 소외되었다가, 태조 즉위 이후에 문하평리, 참찬문하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공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위화도회군 뒤 이성계(李成桂)의 집권과정에서 일시 소외되었으나, 1390년(공양왕 2) 4월 전원주등처병마절제사(前原州等處兵馬節制使)로서 무진회군공신(戊辰回軍功臣)에 녹훈되었다.
1392년(태조 1) 6월 문하평리(門下評理)로서 남경(南京)에 가서 성절(聖節)을 축하하였으며, 1393년 7월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로서 회군2등공신(回軍二等功臣)에 녹훈되고, 같은 해 12월 하정사로서 요동에 이르렀으나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다음해에도 요동에서 명의 저지로 들어가지 못하였다.
그 뒤 외직으로 나아가 서북면병마도절제사(西北面兵馬都節制使)로 평양윤(平壤尹)을 겸하였다. 시호는 순절(順節)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태조실록(太祖實錄)』
- 「무신회군공신의 책봉전말과 그 성격」(박천식, 『전북사학』 3,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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