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전기 보문각, 청연각, 보전화루의 편액을 쓴 서예가.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114년 12월 문덕전학사(文德殿學士)가 되고, 1116년 7월 청연각학사, 1118년 정월 보문각학사가 되었다. 청연각에서 『서경(書經)』「순전(舜典)」을 시강(侍講)하였다. 예종의 명으로 이궤(李軌) · 허지기(許之奇) · 박승중(朴昇中) · 김부일(金富佾) · 윤해(尹諧) 등의 학사들과 함께 삼한 이래의 사적을 모아 『편년통재속편(編年通載續編)』을 찬진하였다.
1116년 2월 국자좨주(國子祭酒)로서 국자감시(國子監試)의 시관(試官)이 되어 유승단(柳升旦) 등 99인을 뽑았다. 1123년(인종 1)에는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지공거 임유문(林有文)과 함께 진사를 취해 변순부(卞純夫) 등 30인을 급제시켰다.
수사공 상서좌복야(守司空尙書左僕射)를 지내던 인종 때, 이자겸(李資謙)의 난이 일어났다. 그 때 도성(都城)에서 직숙(直宿)하다가 변고를 듣고 들어가 왕을 시위하였다. 왕이 연덕궁(延德宮)으로 옮기게 되자 노병(老病)의 몸으로 뒤따라가다가 서화문(西華門)에서 척준경(拓俊京)의 난군에게 살해당하였다.
작품활동
회경전(會慶殿) 병풍에 『서경』의 무일편(無逸篇)도 썼다고 전해지며, 『해동역사(海東繹史)』에는 보문각(寶文閣) · 청연각(淸讌閣) · 보전화루(寶殿畵樓)의 편액도 홍관의 글씨라고 전한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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