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중추원부사, 교주강릉도관찰사, 상의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와 같은 과격한 상소로 인하여 한때 관직을 삭탈당하였으나, 다시 복직되어 대사성을 거쳐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가 되었다. 1392년(태조 1) 정몽주(鄭夢周)가 이성계(李成桂) 일파를 몰아내려 할 때 함께 삭직되어 유배되었으나, 정몽주가 살해되자 풀려나와 좌상시(左常侍)가 되었다.
이 해 이성계 추대에 참여하여 개국공신 3등으로 호조전서가 되고 영성군(寧城君)에 봉해졌다. 1394년 중추원부사에 오르고, 교주강릉도관찰사(交州江陵道觀察使)로 있으면서 정도전(鄭道傳) · 남은(南誾) 등과 가까운 수령 · 군인들이 직책을 소홀히 하거나 차례를 뛰어넘어 승진한 것 등을 엄하게 조사, 처리하였다.
1395년에 상의중추원사(商議中樞院事)가 되고, 이듬해 정당문학(政堂文學) · 경기좌도관찰사가 되었으며, 1404년(태종 4) 판사평부사(判司平府事)에 이르렀다. 시호는 공희(恭僖)이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태조실록(太祖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 『전고대방(典故大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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