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전기 제1대 태조의 여덟째 아들인 왕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아버지 이성계(李成桂)의 공훈으로 유년에 고려로부터 군기녹사(軍器錄事)에 제수되었다. 1392년(태조 1) 8월 세자 책봉 문제가 일어났을 때 배극렴(裵克廉) 등이 왕비 한씨(韓氏) 소생의 정안군 이방원(靜安君 李芳遠)의 책립을 주장하였다.
이 때 왕비 한씨는 이미 죽었으므로 태조는 계비 강씨의 의향을 중히 여겨, 제7왕자인 무안대군 이방번(撫安君 李芳蕃)을 세우고자 하였다. 그러나 배극렴 · 조준(趙浚) · 정도전(鄭道傳) 등이 굳이 강씨의 소생으로 세자를 삼으려면 성격이 광망(狂妄)하고 경솔한 이방번보다는 이방석으로 삼자고 청해 세자로 책봉되었다.
그 뒤 모후의 보살핌과 정도전 · 남은(南誾) 등의 보도로 세자로서의 자질을 익혔으나, 1396년 8월에 강비가 죽으면서 세자의 지위가 약화되었다. 그리하여 1398년 8월 세자 책봉과 정도전 일파의 병권 집중에 반대한 이방원이 주동이 된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 · 남은 · 심효생 및 이방번과 함께 피살되었다.
1406년(태종 6) 8월 소도(昭悼)의 시호를 받았다. 1437년(세종 19) 6월 세종의 배려로 금성대군 이유(錦城大君 李瑜)를 후사로 정하면서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올리게 되었으며, 같은 해 11월 오원(五原)을 증읍(贈邑)받고 사우(祠宇)가 건립되었다. 1680년(숙종 6) 7월 영춘추관사 김수항(金壽恒) 등의 상언에 따라 의안대군으로 추봉되었다. 묘는 광주(廣州)에 있다.
참고문헌
- 『태조실록(太祖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선원계보(璿源系譜)』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목은집(牧隱集)』
- 「정도전론」(이상백, 『이상백저작집』,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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