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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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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의례·행사
오례(길례 · 가례 · 빈례 · 군례 · 흉례)의 하나로, 국가의 제사와 관련된 의례를 지칭하는 용어. 국가의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오례(길례 · 가례 · 빈례 · 군례 · 흉례)의 하나로, 국가의 제사와 관련된 의례를 지칭하는 용어. 국가의례.
개설

길례는 제사와 관련된 의례를 가리킨다. 사람이 죽으면 혼(魂)은 하늘로 돌아가고 백(魄)은 땅으로 돌아간다. 이를 ‘신혼체백(神魂體魄)’이라 하는데, 신혼은 신주에 기대고 의지하여 사당에 모셔지고, 체백은 능(陵)·원(園)·묘(墓)에 모셔진다. 혼령이 깃든 신주를 봉안하는 사당과 체백을 모신 무덤에서 음식을 바치며 정성을 다하는 행위가 제사였다. 제사를 지내는 것은 바로 살아 있을 때처럼 돌아가신 뒤에도 선조에게 효를 계속한다는 뜻이다.

상장(喪葬)에서 죽은 사람을 무덤에 묻고 난 뒤 지내는 우제(虞祭), 졸곡제(卒哭祭), 연제(練祭), 상제(祥祭), 담제(禫祭), 부묘제(祔廟祭) 등은 제사임에 틀림없지만 이들 제사는 흉례에 들어가고 길례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 밖에 지내는 모든 제사와 관련된 의례가 길례에 속한다.

연원 및 변천

유학의 기치를 내걸고 건국한 중국 황실이나 제후국 왕실은 현실에서의 유학 실천을 위해 국가 의례를 다섯 가지, 즉 오례로 규정지었다. 오례는 길례(吉禮)·가례(嘉禮)·빈례(賓禮)·군례(軍禮)·흉례(凶禮)를 가리킨다. 오례 중 길례가 가장 앞서는데, 이는 중국이나 한국 모두 공통적이다.

조선은 성리학을 국학(國學)으로 채택하여 예치(禮治)를 강조한 국가였다. 조선의 국가 전례는 태종대부터 정비에 들어가 세종대에 본격적으로 정리되었다. 이때 국가 전례는 길례·가례·빈례·군례·흉례 순으로 된 오례 체제를 갖추었고, 조선 왕실 최초의 국가 전례서인 『세종실록』 「오례」(1451)에 정리되었다. 『세종실록』 「오례」 이후 편찬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1474),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1744), 『국조속오례의보(國朝續五禮儀補)』(1751), 『국조오례통편(國朝五禮通編)』(1788), 『춘관통고(春官通考)』(1788) 등은 모두 오례 체제를 갖춘 국가 전례서였다. 이 중 『국조속오례의보』는 『국조속오례의』를 보완하기 위해 편찬되어 길례와 가례의 내용만 있고 나머지 빈례, 군례, 흉례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다. 이상의 국가 전례서는 오례라는 큰 틀을 유지하되, 맨 앞에 길례를 두었다.

내용

조선에서 전 시기 동안 봉행된 국가 오례 중에서 가장 중시하고 또 많은 분량을 할애한 의례가 길례였다. 길례는 하늘 신[천신天神]·땅 신[지기地祇]·사람 신[인귀人鬼]에게 각각의 위상과 신격에 맞는 크고 작은 규모의 제사를 올려 신령들의 은택에 보답하려는 의례이므로 유교 예문화(禮文化)의 정수를 가장 잘 드러냈다.

길례에 속한 제사와 관련한 의례를 국가에서 다시 제사의 대상과 규모를 기준으로 대사(大祀)·중사(中祀)·소사(小祀)로 나누었다. 제사의 등급은 시대마다 조금씩 변화했는데, 그것이 국가 전례서의 ‘변사(辨祀)’조에 정리되어 있다.

○ 『세종실록』 「오례」

대사: 사직(社稷)·종묘(宗廟)

중사: 풍운뇌우(風雲雷雨)·악해독(嶽海瀆)·선농(先農)·선잠(先蠶)·우사(雩祀)·문선왕(文宣王)·조선단군(朝鮮檀君)·후조선시조기자(後朝鮮始祖箕子)·고려시조(高麗始祖)

소사: 영성(靈星)·명산대천(名山大川)·사한(司寒)·마조(馬祖)·선목(先牧)·마사(馬社)·마보(馬步)·칠사(七祀)·영제(禜祭)

○ 『국조오례의서례』

대사: 사직·종묘·영녕전(永寧殿)

중사: 풍운뇌우·악해독·선농·선잠·우사·문선왕·역대시조(歷代始祖)

소사: 영성·노인성(老人星)·마조·명산대천·사한·선목·마사·마보·마제(禡祭)·영제·포제(酺祭)·칠사·둑제(纛祭)·여제(厲祭)

기고(祈告): 사직·종묘·풍운뇌우·악해독·명산대천·우사

속제(俗祭): 문소전(文昭殿)·진전(眞殿)·의묘(懿廟)·산릉(山陵)

주현(州縣): 사직·문선왕·포제·여제·영제

○ 『국조속오례의서례』

대사: 기곡사직(祈穀社稷)

중사: 무(無)

소사: 기곡사직(섭행攝行)·계성사(啓聖祠)·관왕묘(關王廟)·선무사(宣武祠)

속제: 영희전(永禧殿)·장녕전(長寧殿)·세자묘(世子墓)

○ 『국조오례통편서례』

대사: (증增)기우사직종묘(祈雨社稷宗廟)·기곡사직섭사(祈穀社稷攝事)·경모궁(친향親享)

중사: (증)경모궁(섭행攝行)·저경궁(儲慶宮)·육상궁(毓祥宮)·연호궁(延祜宮)

소사: (증)기우사직종묘(섭행)·의소묘(懿昭廟)·문희묘(文禧廟)·사현사(四賢祠)

속제: (증)조경묘(肇慶廟)·현륭원(顯隆園)·순강원(順康園)·소령원(昭寧園)·수길원(綏吉園)·효창묘(孝昌墓)·의소묘(懿昭墓)

1788년에 편찬된 『춘관통고』는 ‘변사’조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고 각 항목(사직·종묘·경모궁 등)마다 들어가 있어서 제사 체계를 한 눈에 파악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그에 따라 비슷한 시기에 편찬된 『국조오례통편서례』의 ‘변사’조에 실린 제사 체계를 제시하였다.

다만, 아래의 길례에 해당하는 의례는 『춘관통고』의 것을 참고하였다. 『춘관통고』가 『국조오례의』와 『국조속오례의』,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1758) 등에 수록된 각 예제의 왕대별 고실(故實)과 의절에 필요한 기물의 도설(圖說), 의주를 항목별로 집대성해 놓은 책이기 때문이다.

『춘관통고』의 길례에는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을 합하여 지칭하는 사직, 역대 국왕과 왕비의 신위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종묘, 정조의 생부 장헌세자(莊獻世子)와 생모 혜경궁 홍씨의 신위를 봉안한 경모궁, 역대 국왕과 왕후의 왕릉과 세자·후궁(아들이 국왕 혹은 추존 국왕이 된 후궁)의 원(園)·묘(墓), 국왕의 초상화를 봉안한 진전과 왕실의 가묘(家廟)적 성격을 띤 원묘(原廟), 대원군과 세자·후궁 사당인 궁(宮)·묘(廟), 공자 및 그의 제자와 중국·한국의 현인의 신위를 봉안한 문선왕묘, 교육과 관련된 성균관·향교, 지방의 여러 서원과 사당[祠], 풍운뇌우·명산대천, 농사 관련 선농(先農)·친경(親耕), 의복 관련 선잠(先蠶)·친잠(親蠶), 비가 내리기를 바라는 우사(雩祀), 비가 개기를 바라는 영제(禜祭), 농업의 신 영성(靈星), 수명을 관장하는 노인성, 말의 조상 마조(馬祖), 방목을 가르친 선목(先牧), 얼음을 저장하거나 끄낼 때 지내는 사한(司寒), 제사를 받지 못하는 귀신들에게 지내는 여제(厲祭), 관우(關羽)를 향사하는 관왕묘, 전대(前代)·역대시조(歷代始祖), 도교의 초제(醮祭)를 관장하는 소격서(昭格署) 등에 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민창문화사 영인본‚ 1994)
『국조오례통편(國朝五禮通編)』(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
『춘관통고(春官通考)』(규장각한국학연구원: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영인본‚ 1975∼1977)
「경모궁 제례의 위상 변화」(이현진, 『사도세자 이선(李愃)』, 수원화성박물관, 2015)
「조선시대 국가 제례와 준(尊)·뢰(罍)의 사용」(박봉주, 『조선시대사학보』 58, 2011)
「종묘 제례」(이현진, 『조선의 국가 제사』, 한국학중앙연구원, 2009)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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