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서 ()

목차
관련 정보
신위 해서 천자문
신위 해서 천자문
서예
개념
글씨를 흘려 쓰지 아니하고 정자로 바르게 쓰는 한자서체. 금예 · 정서 · 진서.
내용 요약

해서는 글씨를 흘려 쓰지 아니하고 정자로 바르게 쓰는 한자 서체이다. 해서는 법도를 갖추어서 모범이 되는 서법이라는 뜻이다. 또 정서·진서로서 자체가 단정하고 용법이 법에 맞는다는 뜻도 있다. 이 서체는 종요라는 인물에서 시작되고 왕희지 등에 의해 장착되었다. 해서는 형태와 쓰임새에 따라 여러 명칭이 있다. 한 점도 흘리는 기운이 없다는 장해, 비명을 돌로 새기는 명석서가 있다. 3치 안팎의 큰 해서인 대해, 1치 평방의 중해, 작은 글자인 소해가 있다. 해서는 당나라에 이르러 서체가 성숙되고 서가를 배출하며 표준 서체를 이루었다.

목차
정의
글씨를 흘려 쓰지 아니하고 정자로 바르게 쓰는 한자서체. 금예 · 정서 · 진서.
내용

해서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① 법도(法度)를 갖추어서 해모(楷模:模範)가 되는 서법이라는 뜻이고, ② 정서 혹은 진서로서 자체가 단정하고 용필(用筆)이 법에 맞는다는 것으로 행서(行書) · 초서(草書)와 같이 흘리지 아니한다는 뜻이 있다. 주1로부터 시작되고 주2 등에 의하여 장착되었다.

해서에는 형태와 쓰임새에 따라 다음과 같은 명칭이 있다. ① 정해(正楷):한 점, 한 획에 조금도 흘리는 기운이 없는 것. ② 명석서(銘石書):비명(碑銘)을 돌에 새기는 서체로 정체(正體)를 공손하게 써서 장중(壯重)함을 나타내는 것. ③ 대해(大楷):해서의 큰 자[大字], 지극히 큰 것은 방서(榜書) · 벽과서(擘窠書)라 일컫는다. 대체로 3치 안팎의 크기를 말한다.

④ 중해(中楷):방촌(方寸), 즉 1치 평방의 해서로 촌해(寸楷)라고도 한다. ⑤ 소해(小楷):소자(小字)의 해서로 수푼(數分) 평방의 자양(字樣)이며 뚜렷한 예는 왕희지의 주3 · 주4이나 주5의 십삼행락신부(十三行洛神賦) 등이 그것이다. 소해의 아주 작은 것은 승두서(蠅頭書) · 세자(細字)라고도 일컫는다. 승두서는 크기가 파리머리만 하다는 말이고 세자는 가는 좁쌀[細黍]만하다는 데서 연유되었다.

해서는 또 북위해(北魏楷) 또는 위체(魏體)와 당해(唐楷)로 나누어진다. 위체는 북조(北朝)의 원위시대(元魏時代)의 해서체로 석각(石刻) · 마애(摩崖) · 주6 등에서 볼 수 있다. 이 때에 처음 해서가 시작되어 예법(隷法)에서 벗어나려는 과도기이기 때문에 형태가 여러 가지로 변하였으며, 방정(方正)하고 거세며 묵직한 것을 주로 하여 북비체(北碑體) 또는 위체라고 하였다.

위체의 특징은 필기(筆氣)가 주8하고, 의태(意態:마음의 상태)는 주9하며, 길고 짧으며 크고 작음이 그 형태에 따라 분항포백(分行布白)에 있어 묘(妙)를 다하였으되 정제한 가운데에서 변화하고 방평(方平)한 속에 기굴(奇堀)함을 감추어 정채(精采)함을 다하였다. 위체는 해서의 발전시기로서 위로 종(鍾) · 왕(王)을 잇고 아래로 수(隋) · 당(唐)을 열었으니 당에 이르러 해서는 완전히

완원(阮元)주10의 남북서파론(南北書派論)에, “북파(北派)는 중원(中原)의 고법(古法)으로 삼가고 치졸하나 비방(碑榜)에 으뜸”이라 하여 비학(碑學), 즉 위체를 숭상하는 학풍의 바람이 크게 일어났다. 당해(唐楷)는 북위해에서 수대(隋代)를 거쳐 해서의 완성을 보게 되는데, 그 규구(規矩)가 잡힌 해서의 전형(典型)을 이룬다.

수대에는 아직 필획에 있어 다소 예서의 잔영이 보이며, 당대(唐代)에 이르러서 서체가 성숙되고 서가(書家)를 배출하게 되며 표준서체를 이루게 된다. 그 대표적 서가로는 주11 · 주12 · 주13 · 주14 · 주15을 들 수 있다.

북위해는 예서에서 해서로 옮겨지는 과도기적 형태로 방필 위주의, 아직 예서에서 탈피되지 않은 원형(原形)의 해서이며, 당해는 숙달되고 규구가 짜임새 있게 틀이 잡힌 해서이다.

참고문헌

『書法硏究』(王壯爲, 臺灣商務印書館, 1969)
『中國書法大辭典』(香港書譜出版社,1984)
주석
주1

중국 삼국 시대 위(魏)나라의 대신ㆍ서예가(151~230). 자는 원상(元常). 조조를 도운 공으로 위나라 건국 후 태위(太尉)가 되었다. 해서(楷書)에 뛰어나 후세에 종법(鍾法)으로 일컬어졌으며, <선시표(宣示表)>, <묘전병사첩(墓田丙舍帖)#GT#따위가 법첩(法帖)으로 전한다. 우리말샘

주2

중국 진(晉)나라의 서예가(307~365). 자는 일소(逸少). 우군 장군(右軍將軍)을 지냈으며 해서ㆍ행서ㆍ초서의 3체를 예술적 완성의 영역까지 끌어올려 서성(書聖)이라고 불린다. 작품에 〈난정서(蘭亭序)〉, 〈상란첩(喪亂帖)〉, 〈황정경(黃庭經)〉, 〈악의론(樂毅論)〉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3

도가(道家)의 경문. 위 부인(魏夫人)이 전한 황제 내경경(黃帝內景經), 왕희지가 베껴서 거위와 바꾸었다는 황제 외경경(黃帝外景經), 황정 둔갑 연신경(黃庭遁甲緣身經), 황정 옥축경(黃庭玉軸經)의 네 가지가 있다. 우리말샘

주4

중국 삼국 시대에, 위(魏)나라의 하후현(夏侯玄)이 연나라의 명장 악의(樂毅)에 대해서 쓴 소론. 진나라 왕희지가 해서(楷書)로 쓴 것이 유명하며, 해서의 법첩(法帖)이 되어 있다. 우리말샘

주5

중국 진(晉)나라의 서예가(344~388). 자는 자경(子敬). 예서(隷書), 초서(草書)를 잘 썼으며 작품에 〈낙신부십삼행(洛神賦十三行)〉, 〈지황탕첩(地黃湯帖)〉, 〈중추첩(中秋帖)〉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6

불상이나 부처의 화상(畫像)을 만듦. 우리말샘

주7

‘혼후하다’의 어근. 우리말샘

주8

온화하고 인정이 두텁다. 우리말샘

주9

신이 나서 정도가 지나치도록 흥겨움. 또는 그렇게 노는 짓. 우리말샘

주10

중국 청나라의 학자(1764~1849). 자는 백원(伯元). 호는 운대(芸臺). 서학(書學)에 정통하여 전례(篆隷)를 잘하였다. ≪경적찬고≫ㆍ≪십삼경주소교감기(十三經注疏校勘記)≫를 편집하였으며, 청나라 고증학을 집대성하였다. 우리말샘

주11

중국 당나라의 서예가(557~641). 자는 신본(信本). 왕희지의 서법(書法)을 이어받아 해서(楷書)의 모범이 되었다. 작품으로는 <황보탄비(皇甫誕碑)>, <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泉銘)#GT#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12

중국 당나라의 서예가ㆍ문인(558~638). 자는 백시(伯施). 당태종에게 중용되었다. 덕행ㆍ충직ㆍ박학ㆍ문사(文詞)ㆍ서한(書翰)의 오절(五絕)로 칭송되었으며, 특히 해서(楷書)의 일인자로 알려져 있다. 저서로 ≪북당서초(北堂書鈔)≫가 있다. 우리말샘

주13

중국 당나라 초기의 서예가(596~658). 자는 등선(登善). 글씨에 뛰어나 구양순ㆍ우세남과 함께 초당(初唐) 삼 대가(三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히며, 작품에 <안탑성교서(雁塔聖敎序)#GT#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14

중국 당나라 때의 정치가ㆍ서예가(709~784?). 자는 청신(淸臣). 안녹산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저서에 ≪안노공집(顔魯公集)≫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15

중국 당나라의 정치가ㆍ서예가(778~865). 자는 성현(誠懸). 해서(楷書)에 능했으며, 벼슬은 공부 상서에 이르렀다. 작품으로 <현비탑비(玄祕塔碑)#GT#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2)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