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전체 높이 2.9m, 비신 높이 1.68m, 너비 1.12m. 비신은 푸른 돌로 되어 있으며, 이수(螭首)와 대석(臺石)은 화강암이다. 비문의 마멸과 손상이 심한 편이다.
비의 주인공인 수철(秀澈, 815∼893)은 신라 말기의 선승(禪僧)으로, 본래 심원사(深源寺)에 머물다가 뒤에 실상사에 들어가 실상사의 제2조가 되었다. 893년(진성여왕 7) 5월 79세로 실상사에서 입적하자 왕이 시호와 탑명을 내렸다고 한다. 비문에는 수철의 출생에서 입적 및 조탑(造塔) 경위까지 기록되어 있는데, 실상사에서 수철이 입적하였으나, 원래는 심원사의 승이었기 때문에 비문에는 ‘深源寺○國師秀澈和尙(심원사□국사수철화상)’으로 쓰여 있다.
비문을 짓고 쓴 사람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글씨는 자경(字徑) 2㎝ 내외의 해서(楷書)로 구양순체(歐陽詢體)를 따랐다. 비의 건립 연대 또한 명확하지 않으나 비문 가운데 ‘贈太師景文大王(증태사경문대왕)’ 및 ‘贈太傅獻康大王(증태부헌강대왕)’이라는 구절이 중요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동문선』 권33의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사은표(謝恩表)」 및 『동사강목』 효공왕 1년 7월조에 위와 같이 전대왕(前代王)들을 추증(追贈: 죽은 뒤에 품계를 높여줌)한 기록이 있으므로, 이 탑비의 건립 연대는 효공왕대(897~912)로 추정된다. 비음(碑陰)에는 일찍이 비가 쓰러져 1714년(숙종 40)에 중건한 사실이 새겨져 있다.
탑비의 형식은 당시의 일반적인 탑비 형식과 달리 귀부(龜趺)가 없고 대신 안상(眼象) 6구를 새긴 장방형의 대석 위에 비를 세웠다. 그리고 비좌(碑座)에는 큼직한 복련(覆蓮)을 둘렀다. 이수에는 구름 속에 반룡(蟠龍: 승천하지 않은 용) 두 마리가 대칭하여 여의주를 다투는 듯한 모습이 조각되어 있고 중앙에는 ‘능가보월탑비’라는 전액(篆額)이 음각되어 있는데, 조각 수법이 형식적이며 장엄 조식(莊嚴彫飾)이 약화된 경향이 뚜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