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제21대 국왕인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경주김씨의 쌍릉 합장릉.
건립경위
영조(英祖, 1694~1776, 재위 1724~1776)는 생전에 원비(元妃)인 정성왕후(貞聖王后, 1692~1757) 홍릉(弘陵)에 합장되고자 홍릉을 허우(虛右, 오른쪽을 비워 둠)의 제도로 조성하였다. 1776년 영조 승하 후 정조(正祖, 1752~1800, 재위 1776~1800)는 다른 좋은 자리를 찾게하여, 현재의 원릉이 있는 옛 영릉 자리로 바뀌었다.
1776년 영조 원릉 조성 때 정순왕후(貞純王后) 경주김씨(慶州金氏, 1745~1805)와의 합장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래서 1805년 정순왕후가 승하하자 능호(陵號)를 경릉(景陵)으로 정하였으나 이후 원릉에 합장되는 것이 결정되어 사용하지 않았다. 정순왕후 합장 시 혼유석(魂遊石)과 난간석(欄干石)을 추가로 제작하고, 장명등(長明燈)과 동쪽의 돌거리들을 이동해 지금의 모습이 갖추어졌다.
형태와 특징
금석문
1776년에 건립된 원릉 표석은 앞뒷면의 글씨를 정조, 1890년 표석은 고종(高宗, 1852~1919, 재위 1863~1907)이 썼으며, 정순왕후 표석의 앞면은 이만수(李晩秀, 1752~1820), 뒷면 음기(陰記)는 김조순(金祖淳, 1765~1832)이 짓고, 서용보(徐龍輔, 1757~1824)가 썼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영조(英祖)〕원릉산릉도감의궤(元陵山陵都監儀軌)』(1776)
- 『〔정순왕후(貞純王后)〕원릉산릉도감의궤(元陵山陵都監儀軌)』(1805)
단행본
-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보고서Ⅶ』(국립문화재연구소, 2014)
논문
- 김민규, 「조선시대 능묘비 연구」(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19)
주석
-
주1
: 산릉을 옮겨 모심. 우리말샘
-
주2
: 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물건. 석인(石人), 석수(石獸), 석주, 석등, 상석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
주3
: 건축물을 세우기 위하여 잡은 터에 쌓은 돌. 우리말샘
-
주4
: 넋이 나와 놀도록 한 돌이라는 뜻으로, 상석(床石)과 무덤 사이에 놓는 직사각형의 돌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
주5
: 왕릉이나 무덤 앞에 세워 놓은, 돌로 만든 양 모양의 조각물. 우리말샘
-
주6
: 왕릉이나 큰 무덤 주위에 돌로 만들어 세운 호랑이. 우리말샘
-
주7
: 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 돌 받침 위에 여덟모 진 기둥을 세우고 맨 꼭대기에 둥근 대가리를 얹는다. 우리말샘
-
주8
: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우리말샘
-
주9
: 능(陵) 앞에 세우는 무관(武官) 형상으로 만든 돌. 능 앞 셋째 줄의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하나씩 세운다. 우리말샘
-
주10
: 왕릉 따위의 앞에 돌로 만들어 세워 놓은 말. 우리말샘
-
주11
: 왕릉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봉분 앞에 ‘丁’ 자 모양으로 지은 집. 우리말샘
-
주12
: 임금의 진지를 짓던 주방. 우리말샘
-
주13
: 비석의 뒷면에 새긴 글. 우리말샘
-
주14
: 종교나 신화적 주제를 표현한 미술 작품에 나타난 인물 또는 형상. 우리말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