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순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이조참의, 부제학,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사원(士源)
  • 시호충문(忠文)
  • 풍고(楓皐)
인물/전통 인물
  • 본관안동(安東)
  • 사망 연도1832년(순조 3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이조참의|부제학|이조판서
  • 출생 연도1765년(영조 4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정자 (전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이조참의, 부제학,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은 낙순(洛淳). 자는 사원(士源), 호는 풍고(楓皐).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의 4대손이며, 할아버지는 金달행(達行)이고, 아버지는 부사 김이중(金履中)이며, 어머니는 신사적(申思迪)의 딸이다. 순조의 장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85년(정조 9) 약관에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檢閱)이 되고 초계문신(抄啓文臣)으로 발탁되어 강원도·황해도·함경도 지방의 수령·찰방 중에 겸사(兼史) 1명을 두어 그 지방의 민요와 풍속을 채록해 시정기(時政記)에 수록하자는 의견을 건의, 실시하였다.

1788년 규장각의 대교(待敎) 때 당시 시·벽파(時僻派) 싸움에 중립을 지키며 당쟁을 단호히 없앨 것을 주장하였다. 1789년 동지 겸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고, 이어 이조참의·검교(檢校)·직각(直閣)을 거쳐 1800년 보덕(輔德)에 제수되었다.

순조 즉위 후 부제학(副提學)·행호군(行護軍)·병조판서·이조판서·선혜청제조(宣惠廳提調) 등 여러 요직이 제수되었으나 항상 조심하는 태도로 사양하였다. 1802년 양관 대제학 등을 거쳐 딸이 순조의 비(純元王后)가 되자 영돈녕부사(領敦寧府使)로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에 봉해지고, 이어 훈련대장·호위대장 등을 역임하였다. 또한, 선혜청제조로 있을 때 수효가 적은 친위병을 철폐된 장용영(壯勇營)의 군사로 충당하도록 하였다.

1814년 금위대장, 1826년 양관 대제학이 되고, 1827년 왕의 관서 지방 목욕 행차를 호종했다가 서하(西下) 지방의 민간 실정을 은밀하게 보고해, 경외(京外) 각 아문의 절미(折米)·형정(刑政)·인사(人事)·대동미 등 어려운 실정을 정리하게 하였다. 그 뒤 실권있는 직책은 맡지 않고, 제조직과 영돈녕부사로 있다가 죽었다.

어릴 때부터 기량과 식견이 뛰어났으며 성격이 곧고 밝아서 정조의 사랑을 받았다. 왕세자의 보도(輔導: 보필하여 인도함)를 맡았고, 국구(國舅: 왕의 장인)가 된 뒤로는 왕을 보필해 군덕(君德)을 함양시키는 일에 진력하였다. 그러나 요직이 제수될 때마다 사양하는 것으로 보아 권세를 누리기 위해 노력한 인물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시벽의 당파나 세도의 풍을 형성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둘러싼 척족 세력들이 후일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기반을 조성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문장이 뛰어나 초계문신이 되었고, 비명·지문·시책문·옥책문 등 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죽화(竹畵)도 잘 그렸다. 저서로 『풍고집(楓皐集)』이 있다. 정조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양주의 석실서원(石室書院), 여주의 현암서원(玄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참고문헌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철종실록(哲宗實錄)』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속조야집요(續朝野輯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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