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헌, 의정부우참찬, 내의원제조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이조판서·좌부빈객(左副賓客)·대사헌·의정부우참찬·내의원제조(內醫院提調) 등을 지내고, 1800년 순조가 즉위하던 해 우의정이 되었다. 하지만 1801년 이안묵(李安默)이 홍낙임을 탄핵하면서 서용보의 아버지 서유녕(徐有寧)도 함께 공박하였다. 서유녕은 1779년(정조 3) 화완옹주와 정후겸, 그리고 정순왕후의 오빠였던 김구주 등을 탄핵하였었는데 이 사건이 빌미가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서용보가 사직 상소를 올리고 향리로 돌아가자 정순왕후가 직접 하교하여 서용보를 위로하고 복귀할 것을 종용하였다. 서용보는 우의정으로 복귀한 후 1802년 좌의정이 되었으며, 1804년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가 되었다. 1805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진하 겸 사은정사(進賀兼謝恩正使)가 되어 청나라를 다녀온 뒤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가 있다가, 14년 뒤인 1819년(순조 19) 영의정에 올랐다.
이듬해 영의정을 사임하고 판중추부사·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를 지냈다. 정조와 정순왕후(貞純王后)의 신임이 두터워 항상 측근에서 정사를 보좌하였고 민심수습에 공로가 컸다. 시호는 익헌(翼獻)이다.
참고문헌
- 『정조실록(正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