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5년 집현전직제학에게 지리지와 지도를 같이 작성할 것을 명한 지 8년 뒤에 만들어졌다. 정척과 양성지가 만든 <동국지도>가 정확히 어느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현재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팔도지도 朝鮮八道地圖>와 일본 도요문고(東洋文庫) 소장의 <조선회도 朝鮮繪圖>도 정척·양성지의 <동국지도>로 추정된다.
이회(李薈)의 <팔도지도>로 추정되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의 우리 나라 부분과 비교하면 두만강과 압록강부분이 개선되어 있고 하계망과 산계(山系)가 매우 자세하게 되어 있다. 산계에서는 이회의 <팔도지도>에서와 같이 개별적인 산보다도 산맥을 자세히 표시하고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도로·부·군·현·병영·수영 등 인문현상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고 각 부·군·현에서 수도까지의 일정과 이수(里數)가 일본 문고본(內閣文庫本)에는 기록되어 있다. 현재의 흑룡강이 동서로 상징적으로 그려져 있는 것도 이 지도의 특징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소장본은 세로 140㎝, 가로 97㎝의 채색사본이고 장지바탕에 그려져 있다. 이 지도는 영조대에 만들어진 정상기(鄭尙驥)의 <동국지도>의 바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