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축의 채색 필사본이다. 표제는 ‘강도지도(江都地圖)’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주1이다.
1718년(숙종 44) 갈곶돈 혁파 사실을 기록하였고, 1726년(영조 2)에 축조된 작성돈을 그려 놓았다. 반면, 간화부성의 행궁에 1782년(정조 6) 축조된 외규장각은 그려 놓지 않았다. 이로 보아 「강도지도(江都地圖)」는 조선 후기인 18세기 중엽을 전후한 시기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강화도를 중심으로 김포와 통진(通津), 교동 일대와 한강, 임진강, 예성강 하구를 그려 놓았다. 강화도는 해상으로 침투하는 외적을 방어하는 군사요충지로, 일찍부터 돈대(墩臺)와 성곽 등을 쌓아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지도에도 강화성(江華城)을 비롯하여 군사기지인 월곶(月串), 제물(濟物), 덕진(德津), 초지(草芝), 인화(寅火) 등의 진보(鎭堡)를 표시해 놓았다.
강화도와 통진 사이의 바다를 염하(鹽河)라고 부르는데, 대부분의 배들이 이곳을 경유하여 서울로 들어간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이곳 연안에는 여러 진보와 장성이 축조되어 있었다. 특히 덕진진(德津鎭) 앞 해안에 손돌목이라고 부르는 손돌항(孫乭項)을 표시해 놓았는데, 이곳은 물살이 빠르고 암초가 많아 이 지역 뱃길 가운데 가장 험하기로 소문난 곳이다. 강화 외성은 강화도 동쪽 해안의 장성으로, 원래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축조한 것이다. 조선시대에 계속 보수하여 군사시설로 이용하였다.
강화도의 남쪽에는 1707년(숙종 33) 강화유수 민진원(閔鎭遠)이 간척사업을 위해 쌓은 선두포둑을 그려 놓았다. 통진의 북쪽에는 이 지역의 최종 방어 기지인 문수산성(文殊山城)의 모습도 보인다. 강화성의 내부에는 행궁을 포함하여 각종 관아 건물을 상세하게 그려 놓았다.
18세기 중엽 강화도의 군사적 상황은 물론, 읍성 내의 각종 관아 시설과 간척지의 현황도 파악할 수 있는 지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