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방여전도 ()

대동방여전도
대동방여전도
인문지리
문헌
1868년 이후, 김정호의 목판본 『대동여지도』를 베껴 그린 지도.
문헌/고서
편찬 시기
1868년 이후
권책수
21첩
판본
채색 필사본
표제
대동방여전도(大東方輿全圖)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대동방여전도』는 1868년 이후 김정호의 목판본 『대동여지도』를 베껴 그린 지도이다. 21첩의 채색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대동여지도』의 내용을 따르고 있으나 일부 빠진 부분이 있고, 산줄기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였다. 『대동여지도』가 다양하게 활용되었음을 보여 주는 지도이다.

정의
1868년 이후, 김정호의 목판본 『대동여지도』를 베껴 그린 지도.
저자 및 편자

김정호(金正浩)가 1861년(철종 12)에 제작한 목판본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베껴 그린 『대동방여전도(大東方輿全圖)』의 저자는 알 수 없다.

서지사항

21첩의 채색 필사본이다. 크기는 세로 32.2㎝, 가로 20.7㎝이다. 표제는 ‘대동방여전도’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주1이다.

편찬 및 간행 경위

흥선대원군이 1868년(고종 5)에 경복궁(景福宮)을 복원하면서, 예전 후원 일대에 융문당과 융무당 등의 건물을 짓고 이 지역을 경무대라 불렀는데, 지도에는 『대동여지도』에 없는 경무대가 표시되어 있다. 이것으로 볼 때 『대동방여전도』는 1868년 이후에 제작한 지도이다.

구성과 내용

『대동여지도』는 22첩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이 지도는 추자도 부분과 제주도 지역을 하나의 첩으로 합쳐 전체 21첩으로 구성하였다. 『대동여지도』의 내용을 따랐으나 일부 봉수의 표시가 빠져 있다. 또 『대동여지도』는 산세에 따라 크기를 달리하는 산악 투영법으로 산지를 표현한 반면, 이 지도는 봉우리를 모식적으로 이어 그리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 밖에 『대동여지도』의 지도유설(地圖類說), 지도의 범례에 해당하는 지도표(地圖標)와 각 도별 주현(州縣), 대소영(大小營), 진보(鎭堡), 산성, 봉수, 역참(驛站), 방면(坊面), 전부(田賦), 민호, 인구, 군총(軍總), 목장, 창고, 곡총(穀總) 등의 표는 그대로 실었다.

의의 및 평가

『대동여지도』의 내용을 그대로 베꼈기 때문에 오류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대동여지도』에 제주도의 산방산(山房山)이 산방천(山房川)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는데, 『대동방여전도』에도 같은 오류가 보인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목판본뿐만 아니라 필사본까지 제작되면서 다양하게 활용되었음을 보여 주는 지도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오상학, 『한국 전통지리학사』(들녘, 2015)
이찬, 『한국의 고지도』(범우사, 1991)
주석
주1

청구기호: 규 1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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