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제23대 국왕인 순조와 순원왕후 안동김씨의 합장 단릉.
건립경위
1856년 인릉의 새로운 자리가 결정되었는데, 태종(太宗, 1367~1422, 재위 1400~1418) 헌릉(獻陵) 오른쪽 언덕으로 세종(世宗, 1397~1450, 재위 1418~1450)의 옛 영릉(英陵) 자리였다. 이곳에서 옛 영릉의 문석인(文石人), 무석인(武石人) 등의 돌거리들이 발굴되었으며, 이 작품들은 소헌왕후(昭憲王后, 1395~1446)를 위해 1446년 제작되었다.
또 인근에 있던 장경왕후(章敬王后, 1491~1515) 옛 희릉〔舊禧陵, 1515년 조성〕 자리에서도 옛 돌거리들이 발견되었으며, 이 돌거리들 중 쓸 수 있는 것을 인릉에 재사용하였다.
1857년 순원왕후(純元王后, 1789~1857) 승하 후 능호는 문릉(文陵)으로 결정되었으나, 인릉에 합장되어 사용하지 않았다. 순원왕후는 순조 인릉 왼쪽에 합봉(合封)되었으며, 봉분이 하나인 단릉(單陵)으로 조성되었다. 순원왕후 합봉 시 봉분의 크기가 커지면서 면전석(面磚石), 죽석(竹石)의 크기가 달라져 새로 제작하였다. 그 외의 돌거리는 다시 제작하지 않았으며, 표석만 갈아서 다시 새겼다.
형태와 특징
금석문
1900년에 순조와 순원왕후를 숙황제(肅皇帝)와 숙황후(肅皇后)로 추숭하고 건립한 표석은 앞뒷면의 글씨를 모두 고종(高宗, 1852~1919, 재위 1863~1907)이 썼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순원왕후(純元王后)〕인릉산릉도감의궤(仁陵山陵都監儀軌)』
- 『〔순조(純祖)〕인릉산릉도감의궤(仁陵山陵都監儀軌)』
- 『〔순조(純祖)〕인릉천봉산릉도감의궤(仁陵遷奉山陵都監儀軌)』
단행본
-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보고서Ⅷ』(국립문화재연구소, 2015)
논문
- 김민규, 「조선 왕릉 장명등 연구」(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사학위논문, 200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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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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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능(陵) 앞에 세우는 무관(武官) 형상으로 만든 돌. 능 앞 셋째 줄의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하나씩 세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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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돌 난간의 기둥 사이에 동자석을 받쳐서 건너지른 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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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왕릉이나 무덤 앞에 세워 놓은, 돌로 만든 양 모양의 조각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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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왕릉이나 큰 무덤 주위에 돌로 만들어 세운 호랑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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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 돌 받침 위에 여덟모 진 기둥을 세우고 맨 꼭대기에 둥근 대가리를 얹는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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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넋이 나와 놀도록 한 돌이라는 뜻으로, 상석(床石)과 무덤 사이에 놓는 직사각형의 돌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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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왕릉 따위의 앞에 돌로 만들어 세워 놓은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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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왕릉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봉분 앞에 ‘丁’ 자 모양으로 지은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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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능(陵), 원(園), 묘(廟), 대궐, 관아(官衙) 따위의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문(門). 둥근기둥 두 개를 세우고 지붕 없이 붉은 살을 세워서 죽 박는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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