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릉 ()

조선시대사
유적
문화재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조선 제11대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무덤.
유적/고인돌·고분·능묘
양식
건립 시기
조선 전기
관련 국가
조선
관련 인물
장경왕후
소재지
경기도 고양시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사적(1970년 05월 26일 지정)
소재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길 233-126 (원당동, 서삼릉)
내용 요약

희릉(禧陵)은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조선 제11대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무덤이다.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 안에 자리하며 효릉과 예릉을 통합하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암반에 능침을 조성하였다는 이유로 1537년에 헌릉의 서쪽 언덕에서 천릉하여 고양시에 자리 잡았다. 1973년에 초장지가 발굴되어 16세기 초 회격릉의 구조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를 주었다.

정의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조선 제11대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무덤.
건립 경위

1515년 3월 2일에 장경왕후(章敬王后, 1491~1515)가 원자를 낳고 산후병으로 승하하였다. 총호사(總護使)는 정광필이며, 산릉도감 제조로는 안윤덕 · 유담년 · 남곤을 임명하였다. 산릉 후보지로 경릉(敬陵) 국내가 왕후의 능으로 합당하며 공역이 편리한 반면, 헌릉(獻陵) 국내 후보지는 산세가 장대하여 한강을 건너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하였으나, 중종(中宗, 1488~1544, 재위 1506~1544)은 쌍릉을 조성하기에 적합한 곳을 택하여 헌릉으로 결정하였다.

장마를 피하여 급히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 3월 29일에 현궁(玄宮)을 만들기 위하여 구덩이를 5자쯤 파내니 암반이 나왔다. 다시 터를 알아볼 여유가 없어 약간 아래쪽을 파 보고 돌이 나왔지만 제거할 수 있다고 하여 그 자리에 산릉을 조성하였다. 약 2개월만에 급히 진행된 공역이 마무리되고, 윤4월 2일에 발인하여 4일에 국장 의례를 갖추어 안장하였다.

12년쯤 지난 1537년에 희릉(禧陵)의 능침에 돌이 있다는 논란이 일어나, 산릉을 담당하였던 신료들에게 죄를 묻고 천릉을 진행하였다. 새로 산릉을 옮길 후보지는 초장지에서 약 2~3리 떨어진 옹암의 언덕과 희릉의 남산 화소(火巢) 밖에 있는 취적동을 추천하였다.

그러나 중종은 민폐를 줄이기 위하여 고양군(지금의 고양 서삼릉)으로 결정하였다. 8월 26일에 옛 능에서 발인하여 9월 6일에 고양군의 새 능으로 옮겨졌다. 세종영릉(英陵)을 여주로 천릉할 때처럼 옛 희릉에 조성된 석물(石物)은 모두 땅에 묻었다.

변천

1544년에 중종이 승하하여 장경왕후의 능침 오른쪽에 중종의 능을 조성하고 중종의 능호를 따라 정릉(靖陵)이라 하였다. 1545년에 장경왕후의 아들, 인종이 승하하여 희릉의 서쪽에 산릉을 마련하고 능호를 효릉(孝陵)이라 하였다.

1562년에 문정왕후가 풍수를 이유로 중종의 능침을 옮겨가, 다시 장경왕후의 능침만 남게 되어 능호를 희릉이라 하였다. 1864년에는 중종의 능침이 있던 곳에 철종예릉(睿陵)이 건립되면서 희릉과 효릉 · 예릉을 합하여 서삼릉이라 하고, 1970년에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의의 및 평가

희릉은 천릉하여 초장지가 남아 있었는데, 1973년에 세종대왕 초장지로 인식되어 발굴이 시작되었다. 2007~2008년에 현궁까지 발굴이 진행되어 회격(灰隔)이 드러나면서 장경왕후의 초장지로 밝혀졌다.

1515년에 헌릉의 서편에 조성된 희릉의 현궁은 회격으로 조성되고 그 외곽에 숯을 다져 쌓은 탄격이 남아 있었다. 『 산릉도감의궤(山陵都監儀軌)』가 남아 있는 17세기 이후의 회격과는 차이가 있으며, 16세기 초의 회격으로 조성된 현궁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를 주는 사례이다.

참고문헌

원전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춘관통고(春官通考)』

단행본

『종합학술조사보고서 조선왕릉 Ⅲ』(국립문화재연구소, 2012)
『전 세종대왕초장지(구영릉) 발굴조사보고서』(한국문화재보호재단 · 문화재청, 2009)

인터넷 자료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위키실록사전(http://dh.aks.ac.kr/sillokwiki)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신지혜(건축문헌고고스튜디오 연구원)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