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조선 제11대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무덤.
건립 경위
장마를 피하여 급히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 3월 29일에 현궁(玄宮)을 만들기 위하여 구덩이를 5자쯤 파내니 암반이 나왔다. 다시 터를 알아볼 여유가 없어 약간 아래쪽을 파 보고 돌이 나왔지만 제거할 수 있다고 하여 그 자리에 산릉을 조성하였다. 약 2개월만에 급히 진행된 공역이 마무리되고, 윤4월 2일에 발인하여 4일에 국장 의례를 갖추어 안장하였다.
12년쯤 지난 1537년에 희릉(禧陵)의 능침에 돌이 있다는 논란이 일어나, 산릉을 담당하였던 신료들에게 죄를 묻고 천릉을 진행하였다. 새로 산릉을 옮길 후보지는 초장지에서 약 2~3리 떨어진 옹암의 언덕과 희릉의 남산 화소(火巢) 밖에 있는 취적동을 추천하였다.
그러나 중종은 민폐를 줄이기 위하여 고양군(지금의 고양 서삼릉)으로 결정하였다. 8월 26일에 옛 능에서 발인하여 9월 6일에 고양군의 새 능으로 옮겨졌다. 세종의 영릉(英陵)을 여주로 천릉할 때처럼 옛 희릉에 조성된 석물(石物)은 모두 땅에 묻었다.
변천
의의 및 평가
1515년에 헌릉의 서편에 조성된 희릉의 현궁은 회격으로 조성되고 그 외곽에 숯을 다져 쌓은 탄격이 남아 있었다. 『산릉도감의궤(山陵都監儀軌)』가 남아 있는 17세기 이후의 회격과는 차이가 있으며, 16세기 초의 회격으로 조성된 현궁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를 주는 사례이다.
참고문헌
원전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춘관통고(春官通考)』
단행본
- 『종합학술조사보고서 조선왕릉 Ⅲ』(국립문화재연구소, 2012)
- 『전 세종대왕초장지(구영릉) 발굴조사보고서』(한국문화재보호재단 · 문화재청, 2009)
인터넷 자료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 위키실록사전(http://dh.aks.ac.kr/sillokwiki)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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