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장릉은 1636년 왕후릉이 파주 북운천리(지금의 파주시 문산읍 운천2리 일대)에 조성되었다. 1649년 인조(仁祖, 15951649, 재위 16231649)가 합장되었으나 풍수 관련 문제와 돌거리들이 벌어지고 뱀과 벌레들이 나오자 1731년 현재의 자리로 천릉되었다.
파주 장릉은 인조와 인열왕후(仁烈王后, 1549~1635) 합장의 봉분 주변에 양석(羊石), 호석(虎石), 망주석(望柱石), 혼유석(魂遊石), 장명등(長明燈), 문석인(文石人)과 무석인(武石人), 석마(石馬)가 건립되어 있다. 혼유석은 2좌가 설치되어 있는데 세종 영릉을 따랐기 때문이다. 돌거리 제작에 사용된 돌은 강화 매음도(煤音島, 지금의 석모도)에서 채취한 것을 사용하였다.
능강 아래에는 정자각(丁字閣), 비각(碑刻)이 있으며, 수라간(水剌間)과 수복방(守僕房)은 사라져 없어졌다. 파주 장릉 입구에는 재실(齋室)이 남아 있으며, 안향청(安香廳)과 전사청(典祀廳)으로 추정되는 건물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