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군거(君擧), 호는 수재(守齋). 영안위(永安尉)홍주원(洪柱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지경연사 홍만용(萬容)이고, 아버지는 홍중기(洪重箕)이며, 어머니는 이민서(李敏叙)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1718년(숙종 44) 정시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저작에 임명되었다. 1725년(영조 1) 수찬으로 있을 때 탕평책을 상소하여 왕으로부터 신임을 받고 교리에 승진하였다.
1729년 형조참판, 이듬해 대사간이 된 뒤 1731년 대사헌·호조참판을 역임하고, 1733년 한성부좌윤·대사성·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를 지냈다.
1738년 이조참판, 이듬해 우참찬을 거쳐, 1740년 예조판서에 이르렀다. 성품이 온화, 검소하였으며, 목민관이 되어서는 휼민에 힘썼다. 시호는 정헌(貞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