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한성부판윤, 형조판서,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22년(경종 2) 신임사화가 일어나자 벽동(碧潼)에 유배되었고, 이어 영변으로 이배되었다가 1725년(영조 1)에 풀려나 수원부사·충청도관찰사·호조참의·호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이때 경연에서 ‘알인욕(遏人慾)·존천리(存天理)’의 설을 반복하여 아뢰니, 임금이 경청하고 호피(虎皮)를 특사하였다.
1735년 지돈녕부사·한성부판윤 및 공조·형조의 판서를 역임하고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그는 효성이 지극하기로 이름이 있었고, 경(經)·사(史)·백가서(百家書)에 두루 통하였으며, 시와 서예에도 뛰어났다. 김창협(金昌協)·김창흡(金昌翕)·이희조(李喜朝) 등과 친교가 깊었다. 저서로는 『오재집(寤齋集)』이 있다.
참고문헌
- 『경종실록(景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숙종실록(肅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오재집(寤齋集)』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