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사유록』, 『경서고이』, 『해은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803년(순조 3)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순릉참봉(順陵參奉), 1814년(순조 14)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였다. 1842년(헌종 8) 조지서별제(造紙署別提)에 임명되었다가 곧 충청도도사로 옮겼으며, 이듬 해 통정대부에 승진,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에 이르렀다.
사서(四書)와 육경(六經), 여러 성리서를 깊이 연구하였다. 그는 천명(天命)은 이(理)로 말하는 경우도 있고, 기(氣)로 말하는 경우도 있다고 논하였다. 또한, 이기선후설(理氣先後說)에 있어서 이선기후(理先氣後) · 기선이후(氣先理後)가 모두 가능하며, 이기는 서로 체용(體用)이 된다는 이기론을 전개하였다.
저술로는 『고성현고경록(古聖賢考經錄)』 · 『근사속록(近思續錄)』 · 『소계회화록(素溪會話錄)』 · 『석척록(夕惕錄)』 · 『사유록(四遊錄)』 · 『경서고이(經書考異)』 등이 있으며, 문집인 『해은유고(海隱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 『해은유고(海隱遺稿)』
- 『조선유학사(朝鮮儒學史)』(현상윤, 정음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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