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제17대 국왕인 효종과 인선왕후 덕수장씨의 능.
건립경위
여주영릉 돌거리는 인종(仁宗, 1515~1545 재위 1544~1545) 효릉(孝陵) 돌거리를 모방해 제작하였는데, 인조(仁祖, 1595~1649, 재위 1623~1649) 장릉(長陵)이 이 효릉을 참고했으며, 장릉을 옛 영릉이 참고했기 때문이다. 효릉 돌거리 모방을 위해 화원(畵員)을 파견해 정밀하게 조사해 돌거리 제작에 이용하였다.
1674년 인선왕후(仁宣王后, 1618~1674)의 능을 효종(孝宗, 1619~1659, 재위 1649~1659)의 능 아래에 조성하여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이라는 보기 드문 형식이 만들어졌다.
형태와 특징
여주영릉 입구에는 보물로 지정된 여주 효종 영릉재실(驪州 孝宗 寧陵齋室)이 있으며, 이 재실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여주 효종대왕릉 회양목(驪州 孝宗大王陵 淮陽木)이 300여 년의 세월을 견디고 있다.
금석문
1673년 여주영릉 표석 건립 시 마련한 세종 영릉 표석용 석재를 사용하여 1684년 효종 영릉 표석으로 건립하였으며, 전서와 음기는 이정영(李正英, 1616-1686)이 썼다. 폐기된 표석은 1684년 창빈안씨(昌嬪安氏) 신도비(神道碑)로 재사용되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효종(孝宗)〕산릉도감의궤(山陵都監儀軌)』(1673)
- 『〔인선왕후(仁宣王后)〕산릉도감의궤(山陵都監儀軌)』(1674)
단행본
-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보고서Ⅴ』(국립문화재연구소, 2013)
논문
- 김민규, 「조선시대 능묘비 연구」(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19)
- 김민규, 「조선 왕릉 장명등 연구」(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사학위논문, 200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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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능(陵)을 보호하기 위하여 능의 위쪽 둘레에 병풍처럼 둘러 세운 긴 네모꼴의 넓적한 돌. 겉에 12신(神)이나 꽃무늬 따위를 새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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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물건. 석인(石人), 석수(石獸), 석주, 석등, 상석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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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왕릉이나 무덤 앞에 세워 놓은, 돌로 만든 양 모양의 조각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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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왕릉이나 큰 무덤 주위에 돌로 만들어 세운 호랑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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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 돌 받침 위에 여덟모 진 기둥을 세우고 맨 꼭대기에 둥근 대가리를 얹는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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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넋이 나와 놀도록 한 돌이라는 뜻으로, 상석(床石)과 무덤 사이에 놓는 직사각형의 돌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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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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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능(陵) 앞에 세우는 무관(武官) 형상으로 만든 돌. 능 앞 셋째 줄의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하나씩 세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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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왕릉 따위의 앞에 돌로 만들어 세워 놓은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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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능, 원, 묘 따위의 무덤 뒤에 둘러쌓은 나지막한 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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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왕릉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봉분 앞에 ‘丁’ 자 모양으로 지은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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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임금의 진지를 짓던 주방.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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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 비석의 뒷면에 새긴 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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