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이염(李琰). 세종의 여덟 째 아들이고, 어머니는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이다.
1441년(세종 23) 영흥대군(永興大君)에 봉해지고, 1447년(세종 23) 1월 16일에 역양대군(歷陽大君), 1447년 3월 10일에 영응대군(永膺大君)으로 개봉(改封)되었다.
처음에 여산송씨(礪山宋氏) 판중추(判中樞) 송복원(宋復元)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여산송씨가 병으로 내쫓긴 뒤 해주정씨(海州鄭氏) 참판 정충경(鄭忠敬)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부왕의 총애가 지극하였다. 1450년 부왕 세종의 죽음도 영응대군의 저택인 동별궁(東別宮)에서였다. 1463년(세조 9) 『명황계감(明皇誡鑑)』의 가사를 한글로 번역하였고, 글씨와 그림에 능하고 음률(音律)에도 통달하였다. 시호는 경효(敬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