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응대군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전기 제4대 세종의 여덟째 아들인 왕자.
이칭
시호
경효(敬孝)
이칭
염(琰), 역양대군(歷陽大君), 영흥대군(永興大君)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434년(세종 16)
사망 연도
1467년(세조 13)
본관
전주
출생지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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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전기 제4대 세종의 여덟째 아들인 왕자.
개설

이름은 이염(李琰). 세종의 여덟 째 아들이고, 어머니는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41년(세종 23) 영흥대군(永興大君)에 봉해지고, 1447년(세종 23) 1월 16일에 역양대군(歷陽大君), 1447년 3월 10일에 영응대군(永膺大君)으로 개봉(改封)되었다.

처음에 여산송씨(礪山宋氏) 판중추(判中樞) 송복원(宋復元)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여산송씨가 병으로 내쫓긴 뒤 해주정씨(海州鄭氏) 참판 정충경(鄭忠敬)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부왕의 총애가 지극하였다. 1450년 부왕 세종의 죽음도 영응대군의 저택인 동별궁(東別宮)에서였다. 1463년(세조 9) 『명황계감(明皇誡鑑)』의 가사를 한글로 번역하였고, 글씨와 그림에 능하고 음률(音律)에도 통달하였다. 시호는 경효(敬孝)이다.

참고문헌

『세종실록(世宗實錄)』
『단종실록(端宗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선원계보(璿源系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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