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좌랑, 충원현감, 제용감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09년(광해군 1)에 예조좌랑에 이어 정언 · 헌납 · 지평을 역임, 1612년에 문학(文學), 이듬해 장령 · 사간에 이어 제용감정(濟用監正)에 전직했다가, 다시 사간이 되었을 때 계축옥사가 일어났다. 그때 정온(鄭蘊)이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처형이 잘못임을 상소하였다가 대역죄로 몰려 사형이 논의되자, 병을 핑계하여 사직하였다.
1618년 장남 강대수(姜大遂)가 사간원에 있으면서 쟁론하다 유배되자 충원현감으로 좌천되었다. 뒤에 광해군의 난정(亂政)을 항소하다가 유배당하였는데, 인조반정 뒤 1631년 아들 강대수의 상소로 풀려나 전적이 되었다. 이듬해 다시 제용감정에 임명되었으나, 왕에게 사은하고 곧 전리(田里)로 돌아가 한가로이 만년을 보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 『기언(記言)』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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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진사 급제 : 『만력17년기축3월17일종계증광사마방목(萬曆十七年己丑三月十七日宗系增廣司馬榜目)』(성균관대학교 존경각[貴B13KB-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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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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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강대수의 상소 : 인조실록25권, 1631년(인조 9) 윤11월 16일. "전 수찬 강대수가 상소하여 아비 강익문을 위하여 신원을 청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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