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익문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예조좌랑, 충원현감, 제용감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계려(溪黎)
  • 자약(子約)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인조반정
  • 본관진주(晉州)
  • 사망 연도1648년(인조 2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예조좌랑|충원현감|제용감정
  • 출생 연도1568년(선조 1)
  • 출생지합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익환 (진주교육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05월 26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좌랑, 충원현감, 제용감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군우(君遇), 호는 당암(戇菴). 합천 출신. 강희필(姜姬弼)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인수(姜仁壽)이며, 아버지는 판관 강세탁(姜世倬)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89년에 진사가 되고, 1606년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 이듬해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에 임명되어 세자시강원의 설서(說書)를 겸하였다.

1609년(광해군 1)에 예조좌랑에 이어 정언 · 헌납 · 지평을 역임, 1612년에 문학(文學), 이듬해 장령 · 사간에 이어 제용감정(濟用監正)에 전직했다가, 다시 사간이 되었을 때 계축옥사가 일어났다. 그때 정온(鄭蘊)이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처형이 잘못임을 상소하였다가 대역죄로 몰려 사형이 논의되자, 병을 핑계하여 사직하였다.

1618년 장남 강대수(姜大遂)가 사간원에 있으면서 쟁론하다 유배되자 충원현감으로 좌천되었다. 뒤에 광해군의 난정(亂政)을 항소하다가 유배당하였는데, 인조반정 뒤 1631년 아들 강대수의 상소로 풀려나 전적이 되었다. 이듬해 다시 제용감정에 임명되었으나, 왕에게 사은하고 곧 전리(田里)로 돌아가 한가로이 만년을 보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 - 『기언(記言)』

주석

  • 주1

    : 진사 급제 : 『만력17년기축3월17일종계증광사마방목(萬曆十七年己丑三月十七日宗系增廣司馬榜目)』(성균관대학교 존경각[貴B13KB-0048])

  • 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3

    : 강대수의 상소 : 인조실록25권, 1631년(인조 9) 윤11월 16일. "전 수찬 강대수가 상소하여 아비 강익문을 위하여 신원을 청하다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