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반남(潘南). 초명은 박호(朴壕). 자는 중보(仲保). 아버지는 군기시정(軍器寺正) 박치(朴䎩)이며, 어머니는 영춘현감(永春縣監) 성효원(成孝源)의 딸이다. 인종의 장인이다.
1495년(연산군 1) 사마시에 합격, 여러 차례 대과(大科)에 실패하여 음보(蔭補)로 전설사별제(典設司別提)를 거쳐 의금부도사 · 공조좌랑을 역임하고 홍주판관(洪州判官)으로 나아갔다가 과만(瓜滿: 임기만료)이 되자 군기시판관(軍器侍判官)이 되어 다시 중앙으로 들어왔다.
그 뒤 내직으로는 충익부도사(忠翊府都事) · 한성부윤(漢城府尹)을 거쳐 주부(主簿) · 사축(司畜)을 역임하였고, 외직으로는 울진현령 · 은율현감을 지냈다. 1524년 딸이 세자빈(世子嬪: 뒤에 인종의 비)에 책봉되자 종친부전첨(宗親府典籤)이 되고, 곧 돈녕부부정(敦寧府副正)을 거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특진되었다.
죽은 뒤 우의정 겸 춘추관사(右議政兼春秋館事)에 추증되고, 1545년 인종이 즉위하자 영의정 · 금성부원군(錦城府院君)에 가증(加贈: 추증이 더하여짐)되었다. 평소 글씨를 잘 썼으며 특히 송설체(松雪體)에 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