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한성부윤, 울진현령, 은율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중보(仲保)
이칭
박호(朴壕), 금성부원군(錦城府院君)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468년(세조 14)
사망 연도
1524년(중종 19)
본관
반남(潘南: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
주요 관직
한성부윤|울진현령|은율현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한성부윤, 울진현령, 은율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반남(潘南). 초명은 박호(朴壕). 자는 중보(仲保). 아버지는 군기시정(軍器寺正) 박치(朴䎩)이며, 어머니는 영춘현감(永春縣監) 성효원(成孝源)의 딸이다. 인종의 장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95년(연산군 1) 사마시에 합격, 여러 차례 대과(大科)에 실패하여 음보(蔭補)로 전설사별제(典設司別提)를 거쳐 의금부도사 · 공조좌랑을 역임하고 홍주판관(洪州判官)으로 나아갔다가 과만(瓜滿: 임기만료)이 되자 군기시판관(軍器侍判官)이 되어 다시 중앙으로 들어왔다.

그 뒤 내직으로는 충익부도사(忠翊府都事) · 한성부윤(漢城府尹)을 거쳐 주부(主簿) · 사축(司畜)을 역임하였고, 외직으로는 울진현령 · 은율현감을 지냈다. 1524년 딸이 세자빈(世子嬪: 뒤에 인종의 비)에 책봉되자 종친부전첨(宗親府典籤)이 되고, 곧 돈녕부부정(敦寧府副正)을 거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특진되었다.

죽은 뒤 우의정 겸 춘추관사(右議政兼春秋館事)에 추증되고, 1545년 인종이 즉위하자 영의정 · 금성부원군(錦城府院君)에 가증(加贈: 추증이 더하여짐)되었다. 평소 글씨를 잘 썼으며 특히 송설체(松雪體)에 능하였다.

참고문헌

『중종실록(中宗實錄)』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호음잡고(湖陰雜稿)』(정사룡)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