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양이다. 아버지는 좌의정 조문명(趙文命), 어머니는 완흥부부인(完興府夫人) 전주 이씨이다.
1715년(숙종 41)에 출생하였으며, 1727년(영조 3)에 13세의 나이로 4살 어린 효장세자(孝章世子)와 가례를 올렸다. 그러나 다음 해 효장세자가 10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홀로 세자빈 생활을 하였다. 1735년(영조 11)에 사도세자가 태어나자, 영조는 세자빈 조씨를 더 이상 빈궁의 자리에 둘 수 없다고 판단하고 세조 때 의경세자를 잃고 홀로 된 수빈 한씨(粹嬪 韓氏: 소혜왕후)의 고사에 따라 세자가 없는 세자빈으로 현빈(賢嬪)이라는 호칭를 내렸다. 빈궁의 역할을 할 수는 없었지만, 그 위치만큼은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영조는 어린 나이에 홀로 된 현빈을 안타까워하고 아꼈다. 현빈이 사망하자 그 행록에 "현빈이 나를 먹이려고 늘 직접 밤을 삶았는데 영원히 졸서(卒逝)하던 날조차 삶아 놓은 밤이 소반에 남아 있었으니, 이는 현빈이 그날도 진상하려 삶아 놓았다가 병이 위독해져 하지 못한 것"이라고 기록하며 슬퍼하였다.
소생은 없었으나 죽은 뒤 1752년(영조 28)에 효순(孝純)이라는 시호를 받았고, 1776년(영조 52) 장헌세자(莊獻世子)의 아들 정조를 입양 받아 승통세자빈(承統世子嬪)의 호를 받았다. 정조가 즉위한 뒤에는 남편이 진종(眞宗)으로 추존되는 것과 함께 왕비로 추존되었다. 그러나 훗날 고종이 5대를 추존할 때는 추존 계열에 들지 못하였다.
시호는 효순현빈(孝純賢嬪)이며, 효장세자의 묘에 합장되었다. 정조 즉위 후에 왕비로 추존되어 효순왕후가 되었다. 능호는 영릉(永陵)으로 경기도 파주시 조리면 봉일천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