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순왕후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 제21대 영조의 장남 효장세자(孝章世子)의 비.
이칭
  • 승통세자빈(承統世子嬪)
  • 시호효순현빈(孝純賢嬪)
인물/전통 인물
  • 본관풍양(豊壤)
  • 사망 연도1751년(영조 27)
  • 성별여성
  • 출생 연도1715년(숙종 41)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1년
  • 이순구 (서울시 문화재위원)
  • 최종수정 2022년 11월 21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효순왕후는 조선 후기, 제21대 영조의 장남 효장세자(孝章世子)의 비이다. 본관은 풍양, 아버지는 풍양 조씨 좌의정 조문명(趙文命), 어머니는 완흥부부인(完興府夫人) 전주 이씨이다. 1727년(영조 3) 13세에 효장세자(孝章世子)와 가례를 올리고 세자빈이 되었다. 1735년(영조 11)에 현빈(賢嬪)에 봉해졌고 1751년(영조 27)에 3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소생은 없었다.

정의

조선 후기, 제21대 영조의 장남 효장세자(孝章世子)의 비.

가계

본관은 풍양이다. 아버지는 좌의정 조문명(趙文命), 어머니는 완흥부부인(完興府夫人) 전주 이씨이다.

주요활동

1715년(숙종 41)에 출생하였으며, 1727년(영조 3)에 13세의 나이로 4살 어린 효장세자(孝章世子)와 가례를 올렸다. 그러나 다음 해 효장세자가 10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홀로 세자빈 생활을 하였다. 1735년(영조 11)에 사도세자가 태어나자, 영조는 세자빈 조씨를 더 이상 빈궁의 자리에 둘 수 없다고 판단하고 세조 때 의경세자를 잃고 홀로 된 수빈 한씨(粹嬪 韓氏: 소혜왕후)의 고사에 따라 세자가 없는 세자빈으로 현빈(賢嬪)이라는 호칭를 내렸다. 빈궁의 역할을 할 수는 없었지만, 그 위치만큼은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영조는 어린 나이에 홀로 된 현빈을 안타까워하고 아꼈다. 현빈이 사망하자 그 행록에 "현빈이 나를 먹이려고 늘 직접 밤을 삶았는데 영원히 졸서(卒逝)하던 날조차 삶아 놓은 밤이 소반에 남아 있었으니, 이는 현빈이 그날도 진상하려 삶아 놓았다가 병이 위독해져 하지 못한 것"이라고 기록하며 슬퍼하였다.

소생은 없었으나 죽은 뒤 1752년(영조 28)에 효순(孝純)이라는 시호를 받았고, 1776년(영조 52) 장헌세자(莊獻世子)의 아들 정조를 입양 받아 승통세자빈(承統世子嬪)의 호를 받았다. 정조가 즉위한 뒤에는 남편이 진종(眞宗)으로 추존되는 것과 함께 왕비로 추존되었다. 그러나 훗날 고종이 5대를 추존할 때는 추존 계열에 들지 못하였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효순현빈(孝純賢嬪)이며, 효장세자의 묘에 합장되었다. 정조 즉위 후에 왕비로 추존되어 효순왕후가 되었다. 능호는 영릉(永陵)으로 경기도 파주시 조리면 봉일천리에 있다.

참고문헌

  • 원전

  • - 『선원계보(璿源系譜)』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효순현빈묘지명(孝純賢嬪墓誌銘)

  • 단행본

  • - 지두환, 『영조대왕과 친인척』(역사문화, 2009)

주석

  • 주1

    : 왕세자의 아내. 우리말샘

  • 주2

    : 어떤 사람의 말과 행동을 적어 모은 책. 우리말샘

  • 주3

    : 죽어서 멀리 감. 우리말샘

  • 주4

    : 정조가 왕위에 오른 후에 ‘사도 세자’를 바꾼 시호. 조선 영조의 둘째 아들(1735~1762)로 이름은 선(愃)이고, 자는 윤관(允寬)이며, 호는 의재(毅齋)이다. 영조와의 갈등으로 세자에서 폐위되어 서인으로 강등되었고, 영조의 명으로 뒤주 속에 갇혀 굶어 죽었다. 광무 3년(1899)에 다시 ‘장조(莊祖)’로 추존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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