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전기 제7대 왕 세조의 장남인 덕종의 부인이자 제9대 왕 성종의 생모.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그런데 예종이 즉위한 지 14개월 만에 요절하고, 아들 성종이 즉위하였다. 왕실의 가장 어른인 세조비 정희왕후가 예종이 죽던 날 한명회의 사위이자 소혜왕후의 둘째 아들인 13살 잘산군(乽山君) 즉, 성종을 차기 왕으로 지명하였기 때문이다.
성종은 즉위 후 친아버지 의경세자를 회간왕, 의경왕, 덕종으로 추존하여 종묘에 모셨다. 따라서 소혜왕후도 회간왕비, 의경왕비, 덕종비, 인수왕대비, 인수대비 등으로 불렸다. 소혜왕후는 정희왕후, 성종과 함께 며느리 윤씨를 폐비하고 사사(賜死)하는 데 깊이 관여하였다. 이 때문에 손자인 연산군과 갈등이 심화되었고, 갑자사화가 진행되던 1504년(연산군 10) 4월에 창경궁의 경춘전에서 사망하였다. 능은 경릉(敬陵)으로, 경기도 고양시 신도면 서오릉(西五陵)에 있다.
학문과 저술
또 불교에도 관심이 깊어 혼인 직후 세조를 도와 불경 간행에 참여하였다. 사경(寫經) 사업, 사찰 중수(重修), 불상 조성, 불서(佛書) 간행, 목활자 제작 등을 지원하고, 도첩제 폐지를 반대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 『내훈(內訓)』
- 『선원록(璿源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단행본
- 한희숙, 『역사학자가 쓴 인수대비』(솔과학, 2017)
논문
- 이경하, 「소혜왕후 『내훈(內訓)』의 『소학(小學)』 수용 양상과 의미」(『대동문화연구』 70,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2010)
- 이경하, 「15세기 최고의 여성지식인, 인수대비」(『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12, 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06)
- 한희숙, 「조선초기 소혜왕후(昭惠王后)의 생애와 『내훈(內訓)』」(『한국사상과 문화』 27, 한국사상문화학회, 2005)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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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한영정의 딸. 한확의 누이. 인수대비의 고모. 영락제의 후궁으로 생전 여비(麗妃)에 봉해졌다. 사후에는 '강혜장숙'자를 시호에 추가로 받아 공식 호칭은 <강혜장숙여비 한씨>가 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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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공신부인 한씨(恭愼夫人 韓氏, 1410년 음력 4월 9일 ~ 1483년 음력 5월 18일)는 조선 출신의 명나라 후궁이다. 조선에서 명나라에 바친 공녀로, 선덕제의 후궁이 되었다. 한확의 누이이며 소혜왕후의 고모이다. 이름은 계란(桂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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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죽일 죄인을 대우하여 임금이 독약을 내려 스스로 죽게 하던 일.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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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건축물 따위의 낡고 헌 것을 손질하며 고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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