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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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국왕과 왕비의 최측근에서 말을 전하는 내시부(內侍府)의 정 · 종4품 관직.
이칭
  • 이칭승전내시, 승전환관
제도/관직
  • 소속내시부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1년
  • 한희숙 (숙명여대 교수)
  • 최종수정 2022년 10월 25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승전색(承傳色)은 조선시대, 국왕과 왕비의 최측근에서 말을 전하는 내시부(內侍府)의 정 · 종4품 관직이다. 왕명 출납은 ‘승정원 – 승전색 – 왕’으로 이어지는 출납 관계에서 왕과 왕비의 명령을 전달하는 일을 담당하였고, 이들을 ‘승전환관’ 또는 ‘승전내시’라고 불렀다. 내시부의 핵심 요직이자 상위의 직임이었다.

정의

조선시대, 국왕과 왕비의 최측근에서 말을 전하는 내시부(內侍府)의 정 · 종4품 관직.

설치 목적

내시부는 궁궐 내의 감선(監膳) · 전명(傳命) · 수문(守門) · 소제(掃除) 등의 임무를 담당하였는데, 승전색은 그중 왕명과 왕비의 명을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임무와 직능

‘승전’이란 국왕이나 왕비의 명을 구두로 전달하는 것이고, ‘색’이란 담당한다는 뜻으로, 승전색은 국왕이나 왕비의 명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은 내시를 말한다. 대전과 왕비전의 내관은 승전색이라 하고, 세자궁의 내관은 승언색(承言色)이라고 하였다. 국왕의 전교(傳敎) 가운데에서 정사와 관련된 중요한 일들은 승정원에서 담당하였으나, 사소한 일이나 왕비의 전교는 승전색이 담당하였다.

세종은 밖에서 아뢸 일은 숙배(肅拜) 같이 작은 일 외에는 승전색을 면대(面對)하여 아뢰게 하고, 사알(司謁)을 시켜 간접으로 아뢰지 못하게 하였다. 또 내전교지를 전하는 것도 승전색이 직접 받들어 시행하고, 사알을 시켜서 대신 전달하지 못하게 하였다. 또 인정(人停) 후와 파루(罷漏) 전에 궁성문을 열고 닫을 일이 있으면, 입직한 병조 당상 · 도진무(都鎭撫)와 승전색 · 주서(注書)사약(司鑰)이 열고 닫게 하였다.

세조는 왕위에 오른 이후 왕권을 강화하면서 왕명출납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여 승전환관이 승정원에 왕명을 전할 때는 선전아패(宣傳牙牌)와 선전표신(宣傳標信)을 사용하게 하여 왕명출납 시의 문제를 해결하는 한편, 승전색이 왕명을 출납함으로써 생기는 폐단을 미연에 방지하려 하였다.

성종 대에 정희왕후 윤씨가 수렴청정을 할 때 왕명출납을 승전색이 담당하였다. 성종이 직접 정치를 할 때에도 승전색이 왕명출납을 맡았다. 그러나 왕권을 강화하면서 왕명출납을 승전색이 아니라 승지가 직접 아뢰게 하였으며 급한 일이 아니면 반드시 조강과 주강에서 아뢰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잘 지켜지지 않자 공사(公事)를 출납할 적에 항상 사알을 시키는 까닭으로, 일이 지체(遲滯)되는 것이 많고 또 착오된 것도 있으니, 교지를 전달하는 일은 승전색이 아니면 들어주지 말라고 하였다. 1624년(인조2)에는 승전색으로 명을 전하는 것을 태만하게 한 자는 적발하여 파직하도록 하였다.

경국대전』에는 국왕에게는 정4품의 상전(尙傳) 2인을 두어 일을 담당시켰고, 왕비에게는 종4품의 상책(尙冊) 3인 가운데, 1인을 승전색으로 두었다. 이들에게는 체아직이 주어졌다. 『육전조례』에는 ‘대전 승전색 6원, 가승전색(假承傳色) 2원’이라 하여 정원이 늘어났다. 가승전색은 승전색이 추가로 필요한 특별 상황에서 임명되는 승전색이다. 승전색은 내시부의 핵심 요직이자, 상위의 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장번 내시가 맡은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원전

  • - 『경국대전(經國大典)』

  • - 『성종실록(成宗實錄)』

  • - 『세종실록(世宗實錄)』

  • - 『육전조례(六典條例)』

  • - 『전록통고(典錄通考)』

  • - 『태종실록(太宗實錄)』

  • 논문

  • - 홍순민, 「조선왕조 내시부의 구성과 내시 수효의 변천」(『역사와 현실』 52, 한국역사연구회, 2004)

  • - 장희흥, 「조선초기 환관제의 정비와 운영」(『경주사학』 22, 동국대학교사학회, 2003)

주석

  • 주1

    : 명령이나 훈령, 고시 따위를 전하여 보냄. 또는 그 명령이나 훈령, 고시. 우리말샘

  • 주2

    : 문을 지킴. 우리말샘

  • 주3

    : 더럽거나 어지러운 것을 쓸고 닦아서 깨끗하게 함. 우리말샘

  • 주4

    : 임금이 거처하는 궁전. 우리말샘

  • 주5

    : 세자궁에 속한 내시. 우리말샘

  • 주6

    :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대함. 우리말샘

  • 주7

    : 왕비가 거처하던 궁전. 우리말샘

  • 주8

    : 조선 시대에, 서울에서 통행금지를 해제하기 위하여 종각의 종을 서른세 번 치던 일. 오경 삼 점(五更三點)에 쳤다. 우리말샘

  • 주9

    : 고대나 중세 때에, 궁성 성벽에 동서남북으로 내던 문. 우리나라에서는 쌍여닫이식 문을 만들고 그 위에 보통 문루를 세웠으며 합각지붕을 이었다. 우리말샘

  • 주10

    : 조선 시대에, 나라에 긴급한 일이 있을 때 선전관청에서 발급하던 부신(符信). 앞면에는 ‘선전(宣傳)’이라는 글씨가 새겨지고 반대 면에는 어인(御印)을 찍었는데, 이로써 통행을 규제하기도 하였다. 우리말샘

  • 주11

    : 조선 시대에, 경연특진관 이하가 오시(午時)에 임금을 모시고 법강(法講)을 행하던 일. 우리말샘

  • 주12

    : 국가나 공공 단체의 일. 우리말샘

  • 주13

    : 내시부에 속하여 임금의 명령을 전달하는 일을 맡아보던 벼슬. 우리말샘

  • 주14

    : 조선 시대에, 임시로 내시부에 속하여 임금의 뜻을 전달하는 일을 맡아 하던 벼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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