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전 ()

목차
관련 정보
고전산문
작품
조선 후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
목차
정의
조선 후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
내용

1책. 국문필사본. 중국을 지리적 배경으로 삼고, 여주인공 부용의 효행담과 출세담을 다룬 윤리소설이다. 명나라 홍무 7년 성주땅에 곽충성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부귀공명에는 전혀 뜻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늦도록 자식이 없어 걱정하며 지냈는데, 부인 양씨가 치성을 드려 잉태한 뒤 14삭 만에 딸을 낳아 이름을 부용이라 하였다. 또 3년 뒤에는 아들을 낳고 이름을 뇌성이라 하였다. 부용이 10세가 되던 해, 양씨부인이 우연히 병을 얻어 죽게 되면서 부용에게 가문을 빛나게 해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몇 달 뒤에 부친 곽충성마저 병을 얻어 죽게 되자 어린 부용남매는 부모의 장례를 지낼 방도가 없었다. 그들은 통곡하다 지쳐서 잠이 들었는데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부모를 묻을 명당자리를 점지해 주었다. 부용남매는 부모의 장례비를 얻기 위하여 강한림의 종이 되기로 한다. 그들의 사연을 안 강한림이 부용남매에게 100냥을 주었다.

그 돈으로 부용남매가 꿈에서 점지 받은 명당에다 부모를 안장하였더니 모두 그 효성을 칭찬하였다. 한편, 강한림은 장례를 마치고 온 부용남매를 부모의 정으로 보살펴주었다. 강한림에게는 난총과 난화라는 두 딸이 있었다.

난총이 부용의 재주를 질투하는 것과는 달리, 부용과 동갑인 난화는 늘 부용남매를 종의 신분에서 풀어주고 귀한 사람이 되게 해주겠다며 위로하였다. 난총이 손웅진과 혼인을 하여 신행을 할 때 부용을 데려가려 하자, 난화는 만약 부용을 박대하면 형제의 의리를 끊겠다고 하였다.

부용이 고향을 지나는 길에 부모의 산소를 찾아보니 만고부덕비란 비석이 있고, 언덕에는 동자가 나타나 황성길에 백파강이 위태롭다고 알려 주었다. 부용이 동네사람들에게 비를 세운 연고를 묻자, 그 산소에 벌초만 하여도 자식을 낳으므로 마을 주민이 세웠다고 하였다.

손웅진이 연주자사가 되어 그곳으로 가는데, 난총은 백파강에서 물귀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부용을 택하였다. 부용이 몸을 물에 던지자 바람이 불어 배는 파선되고, 부용과 손웅진은 선녀가 구해 주었다. 선녀는 유리병을 부용에게 주며 장차 왕비가 되어 부귀를 얻을 것이라 하였다.

한편, 천자의 아우 경선군이 불치의 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부용의 유리병에 담긴 황일주를 먹고 회복되었다. 이에 천자는 부용의 효성과 충성을 치하하면서 부용을 경선군의 비로 삼았다. 강한림의 도움으로 학업을 닦은 뇌성은 황성에 갔으나 성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부용을 만나지 못했다.

그날 밤, 부용의 꿈에 뇌성이 금관조복으로 궐문 밖에서 울고 있으므로, 꿈에서 깨어 군사를 풀어 찾았으나 만나지 못했다. 부용이 경선군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과거에 상시관이 된 경선군이 과거 글제에 ‘매신장부모(賣身葬父母)’라 내놓았다.

뇌성이 자신의 고행담을 써 장원이 되자, 천자와 경선군은 치하하면서 부용왕비를 만나게 해주었다. 천자는 뇌성을 이승상의 딸과 성혼하게 한 뒤 병마도원수를 봉하고, 그 부친 곽충성을 연왕으로 추존하였다. 황후가 돌아가자, 부용왕비가 난화를 황후로 천하니 천자가 이를 응낙하였다.

천자가 강한림을 불러 이 사실을 알리니, 한림은 부용왕비의 어진 마음에 감복한다. 천자가 경선군에게는 조왕을 봉하고, 뇌성에게는 초왕을 봉하자, 그들은 각기 그곳으로 가서 선정을 베풀었다. 그리하여 조와 초의 두 나라는 나라가 태평스럽고 백성들이 편안하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작품의 구성은 부용의 출생, 고아로서의 성장, 남매간의 이별과 재회, 출세의 과정으로 이어지는 일대기적 삶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전개에서 강조되는 사건은 부모의 장례를 치르는 효성과 그 빼어난 효성의 보답으로 명당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명당의 모티프가 축이 되어 부용남매의 효행과 충렬, 난화자매의 어짊과 패악함이 갈등을 이루고, 해결됨으로써 부용은 행복한 결말을 얻는다. 주제는 고난 속에서도 효행을 실천하면 복을 얻을 수 있다는 효의 의미와, 부귀공명을 통한 영담이 가문의 명예를 높인다는 전형적 유교윤리를 내세움에 있다.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