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본. 1848년에 간행된 목판본 『삼설기(三說記)』에 실린 작품 중의 하나이다. 오한근(吳漢根) 소장본과 파리동양어학교소장본의 상권에 실려 있다. 활자본인 조선서관판 『별삼설기(別三說記)』에는 ‘낙양삼사기(洛陽三士記)’라는 표제로 되어 있다.
옛날, 낙양 동촌에 함께 과공(科工)에 힘쓰던 세 선비가 있었다. 하루는 3인이 봄철을 맞아 백악산에 올라 더불어 산천경개의 아름다움을 완상하다가 술에 몹시 취하여 인사불성이 된다.
마침 이 때 지부(地府) 사자들이 사람을 잡으러 돌아다니다가 그 세 선비를 지부로 잡아가게 된다. 지부에 이르른 세 선비는 최판관에게 자기들이 애매하게 잡혀오게 된 것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한다.
최판관은 생사치부책을 조사해보고 삼십년 뒤에 잡아올 사람을 미리 잡아왔음을 발견한다. 염왕이 이 사실을 알고 세 선비를 다시 지상계로 내보내도록 명한다.
한편, 자기들이 잘못 염라국에 들어오게 된 것을 안 세 선비들은 자신들이 죽은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나 혼백을 어디에 붙일 것이냐 하며 발악한다. 염왕은 명문대가에 점지해 주겠다고 하나, 3인은 자기들의 소원대로 해달라고 하고는, 그렇지 않으면 지부의 부정한 처사를 상제께 고발하겠다고 한다.
염왕은 어쩔 수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여 원하는 바를 써내게 한다. 이에 첫번째 선비는 세상에 남아로 태어나 용맹이 뛰어난 영웅의 삶을 살기를 바란다. 아울러 선비가 지녀야 할 팔절(八節)을 다 구비하고, 또한 천지도수를 안 연후에 여러 병법을 통달하고 과거에 올라 여러 벼슬을 다 거쳐 대장군에 이르러, 천병만마를 지휘하여 위엄이 사해에 진동하는 인물이 되기를 원한다.
두번째 선비는 명가의 자제로 태어나 신선과 같은 풍모의 선비로서 경서를 널리 보아 일대에 문장이 뛰어남을 떨치고, 이어서 암행어사 겸 팔도순무사로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어 했다.
연후에 여러 벼슬을 거치며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고 백관반열을 다스리며 지내다가 나이가 들어 벼슬에서 물러나기를 원한다. 이에 염왕은 두 선비의 소원대로 시행하되 각별히 좋은 날로 가려서 인간에 환도하도록 하고, 또한 뒷날에 서방정토에 태어날 수 있도록 조치한다.
세번째 선비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효행예절을 익히며 올바르게 성장하여 부모에 효도하고, 명당에 초당을 지어 세상영욕을 물리치고 강호지락(江湖之樂)을 즐기며 한가하게 살기를 원한다. 더불어 슬하에는 2남1녀를 두고 내외손이 번창하고 친척간에 화목하게 지내며, 몸에 병 없이 살다가 천수를 다하는 것이 원이라고 말한다.
이에 염왕은 대노하여 욕심이 많고, 말할 수 없이 흉악한 놈이라 꾸짖었다. 성현군자도 하지 못할 일을 모두 다 달라 하니, 그 노릇을 임의로 할 양이면 염라왕을 내놓고 자기 스스로 하겠다고 말한다.
이 「삼사횡입황천기」는 「왕랑반혼전」이나 「당태종전」 같은 불교환생설화(還生說話)를 한국적인 행복관과 결부해서 본 전기소설(傳奇小說)로, 당시 한국인이 생각하고 있는 행복의 개념을 정립하는 데 있어 좋은 본보기가 된다.
즉, 최치원(崔致遠) 이래 현묘지도(玄妙之道)라고 일컫고 있던 신선사상을 한국인이 얼마나 동경하고 있던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도 역설적으로 형상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