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달에 삼군진무소가 의흥부(義興府)로 개칭되면서 판사(判事)로 직명이 바뀌었으나, 1412년 의흥부가 혁파되었다가 1414년을 전후하여 삼군진무소로 복설되면서 도진무의 직명이 다시 나타난다.
모두 3인을 두어 각기 일군(一軍)을 전담하게 하였는데, 혼자서는 벅차다고 하여 모두 6인을 두기도 하였다. 가끔 문신으로 임명되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개의 경우 무신이 겸임관으로서 충당되었다.
삼군진무소가 기능하던 태종 때에는 병조와 군령체계상 같은 지위에 있어서, 왕으로부터 군령이 내려지면 병조당상과 도진무가 함께 나아가 왕명을 받도록 하였다. 1466년(세조 12) 도총관(都摠管)으로 개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