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윤 ()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경주 · 전주 등에 두었던 부(府)를 관할하던 종2품의 지방 장관.
이칭
속칭
수령(守令)
제도/관직
설치 시기
조선시대
소속
부(府)
내용 요약

부윤은 조선시대에 경주 · 전주 등에 두었던 부(府)를 관할하던 종2품의 지방 장관이다. 일반 수령처럼 수령7사(守令七事)를 주임무로 하였으며, 진관(鎭管)의 책임자인 절제사(節制使)를 겸직하였다. 조선시대에 부윤이 설정된 고을은 경주 · 평양 · 전주 · 영흥 · 함흥 · 의주 · 강화 · 광주 등 8곳이었다.

정의
조선시대, 경주 · 전주 등에 두었던 부(府)를 관할하던 종2품의 지방 장관.
설치 배경

고려의 수도였던 경주 · 평양, 조선 왕실의 발상지인 전주,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이 탄생한 영흥 · 함흥, 국왕이 주1하였던 의주 · 강화 · 광주 등에 설치되었다.

임무와 직능

수령 중에서 품계가 가장 높은 종2품이었다. 일반 수령처럼 수령7사가 부윤의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즉, 농업과 잠업 장려, 호구 증가, 학교 진흥, 군정(軍政) 정비, 균등한 주2 부과, 간명한 송사 처리, 간사하고 교활한 풍속의 교정 등이다. 부윤도 수령의 주3을 겸직한다는 규정에 따라 몇 개 고을로 구성된 진관의 책임자인 절제사를 겸직하였다.

변천사항

조선시대에 부윤이 부임하는 부(府)가 설정된 지역은 전 시기에 걸쳐 거의 변동이 없었다. 『경국대전』을 보면 경상도의 경주, 전라도의 전주, 영안도(지금의 함경도)의 영흥, 평안도의 평양 4곳이었으며, 영흥과 평양은 관찰사가 겸직하였다.

반면 전주는 왕성(王姓)의 발원지이기 때문에 별도로 부윤을 두었다. 이시애의 난으로 영흥으로 옮겨갔던 관찰사영이 1509년(중종 4)에 함흥으로 돌아오면서 영흥은 대도호부로 강등되고 함흥이 부윤으로 승격하였다. 조선 후기에도 경주 · 전주 · 평양 · 함흥 등 4곳은 부윤을 유지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경국대전(經國大典)』
『대전회통(大典會通)』
『속대전(續大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단행본

이수건, 『조선시대지방행정사』(민음사, 1989)

논문

박범, 「19세기 전반 의주부의 행정조직과 부윤의 역할 변화」(『한국문화』 87,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9)
장준호, 「임진왜란기 경주의 동향과 경주부윤 박의장의 전시행정」(『국학연구』 36, 한국국학진흥원, 2018)
주석
주1

임금이 도성을 떠나 다른 곳으로 피란하던 일.    우리말샘

주2

국가나 공공 단체가 특정한 공익사업을 위하여 보수 없이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책임을 지우는 노역.    우리말샘

주3

군대, 군비, 전쟁 따위와 같은 군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직업이나 직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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