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호부사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설치한 대도호부를 관할하던 정3품의 지방 장관이다. 일반 수령처럼 수령칠사를 주 임무로 하였으며, 진관의 책임자인 첨절제사를 겸직하였다. 조선시대 대도호부가 설정된 고을은 안동 · 강릉 · 안변 · 영변 · 영흥 · 창원 등 6곳이었다. 전 시기에 걸쳐 일부 조정은 있었지만 대도호부는 4곳을 유지하였다.
일반 수령처럼 수령칠사(守令七事)가 대도호부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즉, 농업과 잠업 장려, 호구 증가, 학교 진흥, 군정(軍政) 정비, 균등한 부역(賦役) 부과, 간단한 송사 처리, 간사하고 교활한 풍속 교정 등이다.
대도호부로 설정된 지역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군정을 정비하고 군사력을 높이는 ‘군정수(軍政修)’라는 업무는 특히 중요하였을 것이다. 대도호부사도 수령의 군직(軍職)을 겸직하는 규정에 따라 몇 개 고을로 구성된 진관(鎭管)의 책임자인 첨절제사(僉節制使)를 겸직하였다. 속관으로 판관을 두기도 하였지만 『경국대전』 반포 이후 폐지되었다.
조선시대 대도호부가 설정된 지역은 전 시기에 걸쳐 거의 변동이 없었다. 『경국대전』을 보면 경상도의 안동, 강원도의 강릉, 영안도(지금의 함경도)의 안변, 평안도의 영변(寧邊) 등 4곳이었으며, 영변은 평안도 병마절도사가 겸직하였다.
이시애의 난으로 영흥으로 옮겨갔던 관찰사영이 1509년(중종 4)에 함흥으로 돌아오면서 영흥은 부윤에서 대도호부로 강등되었다. 1471년(성종 2)에 대도호부로 승격된 안변이 1509년(중종 4) 도호부로 환원되면서 조선 전기 대도호부는 4곳을 유지하였다. 후기에 영변이 혁파되고 창원(昌原)이 대도호부가 되면서 대도호부는 전기처럼 4곳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