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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8품 이상의 외관직(外官職).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익주 (서울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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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 8품 이상의 외관직(外官職).

내용

개성부(開城府)·서경(西京 : 平壤)·동경(東京 : 慶州)·남경(南京 : 楊州, 지금의 서울)과 도호부(都護府)·목(牧)·방어진(防禦鎭) 등에 두어졌다. 품질(品秩)은 8품 이상, 정원은 1인이다.

사록(司祿)·장서기(掌書記)와 함께 경·도호부·목 등 주목(主牧)에만 설치되어 있었으므로, 이들 주목과 그 아래의 주(州)·부(府)·군(郡)·현(縣) 등 영군(領郡)을 행정체계상으로 구별짓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995년(성종 14) 서경에 두어진 것이 처음이며, 그 밖의 지역에는 대체로 문종(文宗) 때에 관제가 정비되면서 설치되었다. 그러나 이후의 폐지여부 및 폐지시기는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1308년(충렬왕 34)에 동경이 계림부(鷄林府)로 바뀐 때에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같은 해 남경이 한양부(漢陽府)로 개편되면서는 병조(兵曹)·보조(寶曹)·공조(工曹) 등과 함께 설치된 경우가 그것이다.

이 때 관속(官屬)으로는 사법조(司法曹) 1인, 기사(記事) 1인, 쇄장(鏁匠) 2인이 두어졌으며, 고려가 멸망하기 직전인 1391년(공양왕 3)에 없어졌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전기(高麗前期)의 외관제(外官制)-지방기구(地方機構)의 행정체계(行政體系)-」(변태섭, 『한국사연구(韓國史硏究)』2, 1968 ; 『고려정치제도사연구(高麗政治制度史硏究)』, 일조각,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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