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초에 제도순관(諸道巡官)이라 하였으나, 1028년(현종 19) 현종의 휘가 순(詢)이었으므로 같은 음을 피하기 위하여 제도관역사(諸道館驛使)라고 개칭하였다.
고려시대의 참역(站驛)은 산예(狻猊)·금교(金郊)·절령(岊嶺)·흥교(興郊)·흥화(興化)·운중(雲中)·도원(桃源)·삭방(朔方)·청교(靑郊)·춘주(春州)·평구(平丘)·명주(溟州)·광주(廣州)·충청주(忠淸州)·전공주(全公州)·승라주(昇羅州)·산남(山南)·남원(南原)·경주(慶州)·금주(金州)·상주(尙州)·경산부(京山府) 등 22도(道)에 나뉘어 설치되어 있었으므로, 관역사 또한 22도에 각각 파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1226년(고종 13)에 관역이 피폐해지자 별감을 파견하여 무휼(撫恤)하게 한 것을 보면, 관역사는 그 이전에 이미 폐지된 듯이 보인다.
그 뒤 관역은 안찰사 등 지방관과 정역별감(程驛別監)이 관장하였으며, 1389년(공양왕 1)조준(趙浚) 등의 건의에 따라서 관역마다 역승(驛丞) 1인씩이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