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대전(大殿)을 숙위하였지만, 동궁(東宮)을 숙위하는 동궁견룡이 따로 설치되어 있었으며, 충렬왕 때부터는 제비주부(諸妃主府)의 숙위에도 동원되었다.
또한 국왕의 의위(儀衛)와 왕태자의 노부(鹵簿)에도 시종하였다. 견룡지유(牽龍指諭)·견룡행수(牽龍行首) 등의 직제가 갖추어져 있었으며, 산원(散員)·대정(隊正) 등 말단 무관으로써 충당되었다.
그러나 항상 국왕과 가까이 하여 총애를 받았으므로 권귀(權貴)의 자제들이 다투어 이 자리에 오르려 하였다 한다. 1274년(충렬왕 즉위년) 숙위 조직으로서 홀치(忽赤)가 설치된 이후에도 폐지되지 않았다. 그러나 설치 및 폐지 시기와 조직·규모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자세히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