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호부사 ()

고려시대사 /조선시대사
제도
고려 · 조선시대에 도호부를 관할하던 지방 장관.
이칭
속칭
수령(守令)
약칭
부사(府事)
제도/관직
소속
도호부
내용 요약

도호부사는 고려 · 조선시대에 도호부를 관할하던 지방 장관이다. 고려시대에는 4품 이상이었고, 조선시대에는 종3품이었다. 조선 전기 44곳이던 도호부는 후기에 70여 곳으로 크게 늘어났다. 함경도 야인과 대결하였던 전기와 달리 후금과 일본이 주적이 되어 평안도와 경상도를 중심으로 도호부를 증설하였기 때문이다.

정의
고려 · 조선시대에 도호부를 관할하던 지방 장관.
정착 과정

고려시대 지방제도는 주현(主縣)-속현(屬縣)의 복합적인 구조였기 때문에 경(京) · 도호부 · 목처럼 규모가 큰 고을에는 판관(判官) · 사록참군사(司錄參軍事) · 장서기(掌書記) · 법조(法曹) · 의사(醫師)라는 속관(屬官)도 파견하여 장관의 통치를 보좌하게 하였다.

임무와 직능

일반 수령처럼 수령칠사(守令七事)가 대도호부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즉, 농업과 잠업 장려, 호구 증가, 학교 진흥, 군정(軍政) 정비, 균등한 부역(賦役) 부과, 간명한 송사 처리, 간사하고 교활한 풍속의 교정 등이다.

도호부로 설정된 지역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군정을 정비하는 ‘군정수(軍政修)’는 도호부사의 중요한 업무였을 것이다. 도호부사도 수령의 군직(軍職) 겸직 규정에 따라 동첨절제사(同僉節制使)를 겸직하였다.

변천사항

조선시대 도호부로 설정된 지역은 전기와 후기가 크게 다르다. 『경국대전』을 보면, 경기 7곳, 경상도 7곳, 전라도 4곳, 황해도 4곳, 강원도 5곳, 영안도 11곳, 평안도 6곳으로 총 44곳이었으며, 충청도에는 도호부가 없었다.

후기에는 경기의 경우, 강화가 유수부로 승격되어 빠진 반면 풍덕 · 통진 · 죽산 · 교동이 추가되어 10곳으로 늘어났다. 충청도는 청풍 1곳이 신설되었고, 경상도는 함양 · 울산 등 8곳이 추가되어 15곳으로 늘어났다. 황해도는 곡산 · 장연 · 옹진 3곳이, 강원은 영월 · 이천(伊川) 2곳이, 함경도는 안변 · 삼수 등 4곳이, 평안도는 중화 · 자산 등 8곳이 추가되어 총 76곳으로 대폭 증가하였다.

이후 수원 · 풍덕 · 함양 · 장연(長淵)이 빠지고 장진(長津) · 후주(厚州)가 추가되어 74곳으로 소폭 줄어들었다. 후기에 도호부가 평안도와 경상도를 중심으로 크게 증가한 것은 주로 함경도 방면의 야인과 대결하던 전기와 달리 후기에는 후금과 일본이 조선이 상대하는 주적이 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원전

『경국대전(經國大典)』
『고려사(高麗史)』
『대전통편(大典通編)』
『대전회통(大典會通)』
『속대전(續大典)』

단행본

이존희, 『조선시대지방행정제도연구』(일지사, 1990)
이수건, 『조선시대 지방행정사』(민음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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