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西京)·동경(東京)·남경(南京)과 대도호부(大都護府)·목(牧) 각 1인씩 두어졌다. 서경의 경우 995년(성종 14)에 두어졌고, 1178년(명종 8)에 8품의 서기(書記) 1인으로 하였다가 1252년(고종 39)에 사록(司錄) 겸 장서기 1인을 두었다.
동경의 경우도 995년에 두어졌는데 남경은 1067년(문종 21)에 두어졌으며, 대도호부와 목 역시 문종 때 사록 겸 장서기가 두어졌다.
1042년(정종 8)에 동경 장서기 정공간(鄭公幹)이 부유수(副留守)·판관(判官)·사록(司錄) 등과 더불어『한서(漢書)』·『당서(唐書)』를 신간하여 진상하는 것으로 보아 장서기는 문장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장서기는 지방관 등이 같이 앉는 의식에서는 판관 이상 부사(府使)들과는 달리 별청(別廳)에 앉도록 규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