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암 ()

불교
유적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산(大慈山)에 있었던 조선전기 에 창건된 암자.
이칭
이칭
대자사(大慈寺), 명적암(明寂庵)
목차
정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산(大慈山)에 있었던 조선전기 에 창건된 암자.
개설

대자사(大慈寺)라고도 한다.

역사적 변천

1418년(태종 18) 태종이 넷째 아들 소경공(昭頃公)의 묘우(廟宇: 왕실에서 영정을 모시기 위한 당우)를 위하여 창건하고 대자암이라고 하였다. 세종 때는 선종(禪宗)에 소속되었으며, 1420년(세종 2) 원경왕태후(元敬王太后)를 위한 3재(三齋)와 5재를 베풀었고, 왕명으로 보현사(普賢寺)에 안치되어 있던 전단불(栴檀佛)을 이 절로 옮겨 모셨으며, 겨울에는 법화법석(法華法席)을 열었다. 1424년에는 법화법석을 열고 설선법회(說禪法會)를 가졌다.

1446년 소헌왕후(昭憲王后)를 위하여 3재를 열고 보살계(菩薩戒)를 설하였다. 5월 세종은 집현전에 명하여 이영서(李永瑞)·강희안(姜希顔) 등으로 하여금 이금사경(泥金寫經)을 봉안하도록 하였다. 이때 안평대군(安平大君)·수양대군(首陽大君) 등이 법석에 참석하여 사경하는 일을 독려하였다. 그 해 겨울 그 사경을 중심으로 한 전경회(轉經會)를 열고 7일 동안 법회를 열었다. 1448년 세종은 예조에 명하여 소헌왕후의 기신재(忌晨齋)를 이 절에서 베풀게 하였고, 1449년 안평대군이 주관하는 수륙재(水陸齋)를 열었다.

문종은 즉위와 동시에 부왕인 세종을 위한 초재를 이 절에서 베풀었는데, 그때 안평대군은 왕에게 고하여 불경을 베껴 쓰고 선왕의 명복을 빌었다. 같은 해 문종은 이 절의 중창을 명하여 그 해 여름 역사를 마치고 사경법회(寫經法會)를 열었다. 이때 『법화경』7권, 『범망경(梵網經)』2권, 『능엄경(楞嚴經)』10권, 『아미타경』1권, 『관음경』1권, 『지장경』3권, 『참경(懺經)』10권, 『십육관경(十六觀經)』1권, 『기신론(起信論)』1권 등을 불전에 올리고 황갑함(䌙甲函)에 넣어서 보관하였다.

또한, 수양대군은 여러 형제들과 함께 이 절에서 큰 법회를 열었다. 문종은 좌부승지 이숭지(李崇之)를 시켜 이 절을 세종의 명복을 비는 원찰(願刹)로 삼고 108인의 승려를 모아 법회를 열었다. 1452년 단종은 문종을 위한 49재 가운데 초재를 이곳에서 베풀었고 계속해서 3재와 5재를 열었다.

그 뒤 성녕대군(誠寧大君: 소경공)의 원당(願堂)을 이 절에 지었으며, 경안대군(慶安大君)의 묘를 쓸 때 절을 그 북쪽으로 100보쯤 되는 곳으로 옮기고 이름을 명적암(明寂庵)이라고 개칭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폐허가 된 뒤 중건되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화계사략지(華溪寺略誌)』
『한국사찰전서』(권상로,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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