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전기에,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산(大慈山)에 창건된 암자. 대자사(大慈寺) 명적암(明寂庵).
건립 경위
변천
1421년에 종파를 통폐합할 때 선종(禪宗)의 18개 사찰에 소속되었다. 그 후 1449년(세종31)에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수륙대재를 봉행(奉行)하였다. 수양대군은 여러 형제와 함께 대자암에서 큰 법회를 열었다.
문종(文宗)은 세종의 명복을 비는 원찰로 삼고 108인의 승려를 모아 법회를 열었다. 1451년(문종 1)에 세종의 3재와 5재를 지내고 소헌왕후의 추념을 위해 『법화경』 7권, 『법망경』 2권, 『능엄경(楞嚴經)』 10권, 『미타경』 1권, 『관음경(觀音經)』 1권, 『지장경(地藏經)』 3권, 『미타참』 10권, 『십륙관경』 1권, 『기신론』 1권 등을 금자(金字)로 서사(金字)하였다. 1452년 단종(端宗)은 문종을 위한 초재와 3재, 그리고 5재를 열었다.
대자암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폐사(廢寺)의 위기를 맞았다. 그 후 대자암에 인조(仁祖)의 아들 경안군과 손자 임창군의 묘소로 조성되었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 때 병화로 소실된 그 터에 경안대군(慶安大君)의 묘를 봉하면서부터 그 유지(遺址)는 묘사(墓舍)가 되었다. 그 북쪽의 약 100보 지점에 절을 짓고는 명적암(明寂庵)이라 하였다. 성재 민이승(誠齋 閔以升, 1649~1698)이 대자암에서 독서하였다고 알려져있다. 현재 경안군과 임창군의 묘소는 경안군과 임창군의 후손인 전주 이씨 문중(門中) 소유로 되어 있으며 고양시의 담당이다. 하버드대학 옌칭 도서관에 안평대군이 대자암에서 사경한 『묘법연화경』이 보존되어 있다.
참고문헌
원전
- 『가람고(伽藍考)』
- 『범우고(梵宇攷)』
- 『신증동국여지승람』
- 『조선왕조실록』
- 『화계사약지(華溪寺畧誌)』
단행본
- 권상로, 『한국사찰전서』 (동국대학교 출판부, 1979)
- 『가산불교대사림』 4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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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젊은 나이에 죽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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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죽은 사람을 생각하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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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설법, 독경, 강경(講經), 법화(法話) 따위를 행하는 자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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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절을 주관하는 승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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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뜻을 받들어 행하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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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금박을 올리거나 금빛 수실로 수를 놓거나 금물로 써서 금빛이 나는 글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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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글씨를 베끼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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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사람이 죽은 뒤 첫 이레 만에 올리는 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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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폐하여져 승려가 없는 절.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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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예전에 건물 따위가 있었거나 사건이 일어나 역사적 자취가 남아 있는 자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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