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신라 고승 의상이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뱃길로 돌아와 서해안에 절을 짓고 부석사라고 했다고 전한다. 부석사에서 조성한 금동 관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의 불두가 현재 일본 쓰시마의 간노지에 소장되어 있다. 서산 부석사 금동 관음보살 좌상의 복장유물에 의하면 1330년에 계진 등 32명 발원자들이 주조하였다. 조선 초에 태조의 왕사인 무학자초가 부석사도 중건하다. 1669년 승려 원응 등이 범종을 조성하였다. 근대에 고승 만공이 부석사에 주석하면서 선풍을 드날리기도 하였다.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도비산(島飛山)에 있는 통일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한 것으로 전하는 사찰.
건립 경위
변천
조선 초에 태조의 왕사인 무학대사(無學大師) 자초(自超)가 중건하였다. 1669년(현종 10) 부석사 승려 원응(元應)과 지준(知俊) 등이 범종을 조성하였다. 1867년(고종 4) 승려 화사(畵師) 해명(海溟)과 춘담봉은(春潭奉恩) 등이 영산회상(靈山會相) 탱화를 조성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승려 금호 약효(錦湖若效)가 칠성도를 조성하였고 승려 봉은이 같은 시기에 영산회상 탱화를 조성하였다. 근대에 고승 만공 월면(滿空月面 1871~1946)이 부석사에 주석(駐錫)하면서 선풍을 드날리기도 하였다.
현존하는 당우(堂宇)로는 극락전을 비롯하여 심검당(尋劍堂)과 요사채, 산신각 등이 있으며 극락전 앞에는 안양루(安養樓)가 있는데 서해를 향하고 있다. 1955년 극락전 해체 복원시 일제강점기 때 중수 사실을 담은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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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 『동국여지승람』
- 『범우고』
단행본
- 권상로, 『한국사찰전서』 권상 (동국대학교 출판부, 1979)
- 한여현, 『湖山錄』 (서산문화원, 1992)
- 허흥식, 『한국금석전문』 중세 하 (허흥식, 아세아문화사, 1984)
- 『가산불교대사림』 10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08)
- 『전통사찰총서』 권13 (사찰문화연구원, 1999)
논문
- 윤용혁, 「고려말의 왜구와 서산 부석사」 (『역사와담론』 69, 2013)
- 정은우, 「서일본지역의 고려불상과부석사동조관음보살좌상」 (『동악미술사학』14, 2003)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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