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고승 의상이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뱃길로 돌아와 서해안에 절을 짓고 부석사라고 했다고 전한다. 부석사에서 조성한 금동 관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의 불두가 현재 일본 쓰시마의 간노지에 소장되어 있다. 서산 부석사 금동 관음보살 좌상의 복장유물에 의하면 1330년에 계진 등 32명 발원자들이 주조하였다. 조선 초에 태조의 왕사인 무학자초가 부석사도 중건하다. 1669년 승려 원응 등이 범종을 조성하였다. 근대에 고승 만공이 부석사에 주석하면서 선풍을 드날리기도 하였다.
서산 지역의 읍지라고 할 『호산록(湖山錄)』에 의하면 신라시대 고승 의상이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뱃길로 돌아와 서해안에 절을 짓고 부석사라고 했다고 전한다. 이와는 달리 조선 건국 후 유금헌(柳琴軒)이 고려 왕조가 멸망한 후 주1 별당(別堂)을 짓고 독서하다가 생을 마쳤는데, 그 후 승려 적감(赤感)이 그 별당을 절로 바꾸었고 서해안 바닷가 가운데에 바위섬처럼 떠 있으므로 절 이름을 부석사라고 했다고 한다. 유금헌은 고려말 서운관 판사를 지낸 바 있고 조선 초에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를 제작한 유방택(柳方澤, 1320~1402)이다.
1330년(충숙왕17) 부석사에서 조성한 금동 관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의 주2가 현재 일본 나가사키[長崎縣]현 쓰시마[對馬島]의 간노지[觀音寺]에 소장되어 있다. 복장유물 「부석사당주 관음주성결변문(浮石寺堂主觀音鑄成結孌文)」에 의하면 1330년에 보권도인(普勸道人) 계진(戒眞)이 함께 현일(玄一), 심혜(心惠), 김동(金同) 등 32명 발원자들이 부모님의 정토왕생을 함께 기원하며 주성(鑄成)하였다고 한다.
조선 초에 태조의 왕사인 무학대사(無學大師) 자초(自超)가 중건하였다. 1669년(현종 10) 부석사 승려 원응(元應)과 지준(知俊) 등이 범종을 조성하였다. 1867년(고종 4) 승려 화사(畵師) 해명(海溟)과 춘담봉은(春潭奉恩) 등이 주3 탱화를 조성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승려 금호 약효(錦湖若效)가 칠성도를 조성하였고 승려 봉은이 같은 시기에 영산회상 탱화를 조성하였다. 근대에 고승 만공 월면(滿空月面 1871~1946)이 부석사에 주4 선풍을 드날리기도 하였다.
현존하는 주7로는 극락전을 비롯하여 심검당(尋劍堂)과 주5, 산신각 등이 있으며 극락전 앞에는 안양루(安養樓)가 있는데 서해를 향하고 있다. 1955년 극락전 해체 복원시 일제강점기 때 중수 사실을 담은 상량문이 발견되었다.